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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금·채권도 ‘시들’…불확실 시대 ‘쉬는 것도 투자다’


 

 

‘뉴 애브노멀 시대’ 예측은 없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펼친다’는 말이 있다. 일이 한창 진행될 때는 세상이 냉철하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월급 모아 몇백만원이나마 굴려보려는 직장인들도 경제와 시장상황이 어찌될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지혜의 부엉이가 날아오르기엔 해가 아직 중천에 떠 있는 듯하다.


아예 그럴듯한 말로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전문가도 나온다. 2008년 위기 전에는 확신에 찬 예언으로 ‘닥터 둠’이란 별명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달 ‘뉴 애브노멀’(New Abnormal)이란 말을 새로 내놨다. 저성장, 저소비 등 경제 부진이 위기 이후의 새로운 정상 상태, 즉 ‘뉴 노멀’(New Normal)이라면 연준의 양적완화가 일단락된 이후의 상황은 예측 불능의 세계가 될 것이란 뜻이다.


일단 지난달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출구전략 일정을 내비친 뒤 피어오른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투자와 자산시장의 변화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비전통적 통화정책’ 시대를 한껏 즐겨온 채권과 금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공감대가 확인된다.


미국에서는 금리가 오르리라는 예상(채권가격 하락) 때문에 6월 한달간 글로벌 채권펀드에서 800억달러(약 91조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올해 펀드에 들어온 1096억달러의 73%에 이르는 돈이 한달 만에 유출된 것이다. 금의 하락은 더 드라마틱하다. 금값은 올해 초부터 불안하게 움직이더니 2분기 석달 동안만 23% 하락했다. 분기 기준으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 1971년 이후 하락폭이 가장 컸다.


국내 자산시장의 변화도 눈에 들어온다. 우선 3년 넘게 지속된 채권의 강세장이 마감하고 있다. 국내채권펀드에서는 지난달 전체 수탁액의 4%인 1조9000억원의 자금이 유출됐다. 해외채권펀드에서도 15개월 연속 유입을 멈추고 5% 남짓인 4000억원이 빠져나갔다.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 채권에서 손실이 커진 때문이다. 금리하락을 예상해 가장 만기가 긴 30년물 국고채에 거액 자산가들이 몰렸던 것이 불과 지난해 9월이다. 이 채권을 산 투자자는 지금 15% 이상 손실을 봤고 개인은 거의 손을 턴 상태다.


이런 변화는 일단 예견된 것들이다. 연준이 돈줄을 조이면 금리는 오르고(채권가격 하락), 하이퍼인플레이션(달러가치 폭락)에 대한 우려도 줄면서 금에 대한 선호도 역시 떨어질 것은 쉽게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불확실하다. 과연 올해 연말부터 연준이 양적완화에서 발을 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미국 경제가 제조업 위주로 살아나는 것 같지만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이 다시 꺼지는 등 지금의 상승세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은 우여곡절 끝에 경기가 바닥을 다지는 중이고,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거품을 빼기 위해 저성장을 감내하면서 금융을 조이고 있다. 신흥국들은 그간 유입된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는데다 미국 때문에 금리까지 높아져 이번 ‘정책 환절기’의 최대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속에서 연준은 경제 상황에 따라 양적완화 축소를 시도했다가 지속을 공언하는 등 갈지자 행보를 할 공산이 크다. 투자자금 역시 채권이나 금에서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매끄럽게 옮겨가기보다는 매우 불안정하게 쏠려 다닐 가능성이 크다.


투자의 고수들도 ‘갈팡질팡’이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이었던 짐 오닐은 “세계경제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1980년대 초 인플레와 싸운 이후) 채권과 나눈 30년 연애의 막장에 진입했다”며 지금은 주식이 회복되는 초기 단계라고 내다봤다.


반면 세계 최대 채권펀드운용사 핌코의 창업자 빌 그로스는 미국 경제가 취약해 “기준금리 인상은 2015년 중반께나 가능할 것이다. 투자자들이 채권에서 탈출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의 펀드는 이번 금리 상승으로 적잖이 타격을 입었고 99억달러(11조원)의 자금이 이탈했다.

2000년대 초반 ‘중국’과 ‘원자재’라는 테마를 짚어내 유명해진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한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어디에 투자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서도 올해 안에 전세계 자산시장이 한두번 폭락할 것이라는 겁나는 예언을 내놓는다. 그는 주식도 채권도 모두 팔아치우고 현금을 보유하거나 설탕, 은, 구리같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실물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국내 기관이나 큰손들은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늘리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이런 관망은 오래갈 것이다. 주식시장을 보면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이 부진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가시화하면 우리 금리도 뛰겠지만 마냥 오르기도 어렵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역설적으로 금리상승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 가계도 당분간은 저축을 늘려 부채 축소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변동이 심하고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손을 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개인들은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시장을 이기기가 어렵다. 저축해서 빚을 갚아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쉬는 것도 투자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 201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