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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현장/언론정책

"언론의 위기? 왜 망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인터뷰] 윤지영 오가닉미디어랩 대표. "플랫폼의 붕괴,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네이버가 한국 언론을 망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네이버가 사라지면 그 트래픽이 언론사 사이트로 몰려올까. 어쨌거나 분명한 건 네이버가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군림하고 있고 좋든 싫든 한국에서 인터넷에서 뭔가 하려면 네이버 플랫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네이버 때문에 먹고 사는 언론사들이 네이버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드니 네이버가 우리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정말 역설적이면서도 코믹한 상황이다.

 

윤지영 오가닉미디어렙 대표는 최근 출간한 '오가닉 미디어'라는 책에서 "미디어는 진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진화의 핵심에는 관계가 있다"고 규정한다. 언뜻 하나마나한 말처럼 들리지만 여기에 한국 언론의 미래와 생존 해법이 담겨 있다는 게 윤 대표의 주장이다. 연결이 지배하고 관계가 만들어가는 오가닉 미디어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과 전면적인 시스템 쇄신이 필요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유기농(오가닉)' 미디어의 반대말은 농약을 듬뿍 친 미디어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윤 대표를 지난 7일 미디어오늘 회의실에서 만났다. 여기서 오가닉은 유기적이라는 의미지만 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네이버에 종속된 한국 언론의 상황이 이를 테면 농약 친 미디어, 유기적이지 못하고 고립돼 있는 미디어로 분류할 수 있겠다. 농약 친 채소는 잘 씻어서 먹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유기적이지 못한 미디어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단 사건 등의 보도를 보자. 수천건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이렇게 큰 사안일수록 웬만큼 관심 있는 독자가 아니고서는 전후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넘쳐나는 파편화된 뉴스가 오히려 뉴스를 읽지 못하게 만들고 뭔가 심각한 것 같은데 복잡하고 재미가 없고 골치 아픈 느낌에 거리를 두게 만든다. 읽고 싶으면 읽고 싫으면 말라는 태도가 사회적 무관심을 부른다.

 

윤 대표는 "연결되지 않은 콘텐츠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늘 연결된 콘텐츠도내일이면 떠내려가고 잊혀진다. 콘텐츠가 지속되려면 관계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윤 대표는 "매개가 곧 콘텐츠의 생산"이라고까지 설명한다. 연결되지 않은 콘텐츠는 죽은 콘텐츠다. 콘텐츠가 어딘가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컨텍스트인데 콘텐츠는 끊어져도 컨텍스트는 절대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오가닉 미디어 이론의 핵심이다.

 

미디어의 3요소를 컨테이너와 콘텐츠와 컨텍스트라고 정의한다면 전통적인 컨테이너 시스템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미디어에서 콘텐츠가 분리되기 시작하고 있다. 윤 대표는 콘텐츠의 가치가 관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연결을 통해 콘텐츠 비즈니스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윤 대표는 "공간 중심의 사고에서 네트워크 중심의 사로로 중심축을 옮겨오지 않으면 진화를 받아들일 수도 대응할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

 

윤 대표가 "컨텍스트에 답이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가닉 미디어'에서 다음과 같은 규정은 신선할 뿐만 아니라 파격적이다. "사용자가 연결의 주체, 즉 매개자라면 모든 연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컨텍스트를 파악하는 것이 습관이 돼야 한다. 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각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에티켓이다. 매개가 곧 콘텐츠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눈치 없이 헤매는 컨텍스트는 콘텐츠를 두 번 죽인다"고 경고한다. "신뢰를 잃게해서 죽이고 고립시켜서 죽인다"는 이야기다. 윤 대표는 "컨택스트 비즈니스는 곧 연결 비즈니스"라고 정의한다. 윤 대표는 "TV가 영화를 죽이지 않은 것처럼 오가닉 미디어가 뉴스를 죽이지는 않겠지만 언론사를 죽일 수는 있다"면서 "컨텍스트를 무시한 비즈니스를 고집한다면 다른 사업자들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고 거듭 경고힌다.

 

과거에는 저녁 9시 뉴스를 기다리거나 다음날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이미 모든 뉴스가 리얼타임으로 전달되고 모두가 기본적인 팩트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가 기관의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공무원 간첩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충분히 알려져 있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는 이미 나온 뉴스를 보완하는, 새롭지만 그다지 놀랍지 않은 파편화된 팩트들로 범벅이 돼 있다.

 

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독자들이 찾는 뉴스는 팩트와 팩트를 매개하고 뉴스 이면의 보이지 않는 진실을 끌어내고 퍼즐을 풀어주는 뉴스다. 현장이 뉴스의 중심이 돼야 하지만 모두가 현장에 매몰돼 있을 때 한 발 물러나 현장을 더 넓게 보고 큰 흐름을 짚어내는 새로운 저널리즘 방법론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게 윤 대표의 주장이다. 이미 독자들은 저만큼 가 있는데 여전히 뉴스 생산자들은 과거의 스토리텔링 기법에 묶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매개 활동이 네트워크를 확장하는데 그게 곧 공간의 확장이고 미디어 영향력의 확장이 된다. 사용자의 매개 활동 없이는 콘텐츠가 서로 연결될 수도 없고 확산될 수도 없고 지속될 수도 없고 따라서 돈을 벌 수도 없다. 저자와 독자의 관계, 공감하는 링크 한 줄에 매개된 친구 관계, 콘텐츠와 콘텐츠의 이어진 관계 등 오가닉 미디어에서 관계는 무궁무진하다. 컨텍스트 비즈니스는 이 무한한 가능성에서 시작된다." 윤 대표의 이론은 "플랫폼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공략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과거에는 시청률이나 구독자 수 또는 페이지뷰 등이 언론의 영향력 지표였다. 뉴스를 보려면 TV를 켜거나 신문을 구독하거나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야 했다. 그러나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소셜 네트워크가 확산되면서 과거의 지배적인 플랫폼이 크게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 어딘가에 접속하지 않아도 뉴스는 다양한 경로로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필터링도 이뤄진다.

 

윤 대표가 말하는 오가닉 미디어는 단순히 독자들 댓글을 활성화하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리트윗이나 좋아요를 많이 받는 차원을 넘어 광활한 네트워크의 노드를 만드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관계가 공간을 만들고 연결이 공간을 발전시킨다. 윤 대표는 "컨텍스트가 곧 공간"이라는 논리를 편다. "어떻게 공간을 만들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콘텍스트를 만들고 계속 살아있도록, 그리고 계속 진화하도록 할 것이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매개는 단순한 전달을 넘어선다. 매개 과정에서 사용자들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에 따라 수많은 스토리가 탄생한다. 창조와 재창조, 복제와 소비의 매개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매개는 무엇보다 생산적인 활동이며 이것이 인터넷을 진화시키는 힘이다. 수많은 인연의 연결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기록되고 상호작용하는 매개가 모여 인터넷의 미래를 만들고 미디어 세상을 진화시킨다."

 

한국 언론이 오가닉 미디어로 진화하지 못하는 배경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폐쇄적인 기자실 문화가 만드는 획일적인 취재 환경, 압도적인 트래픽을 점유하고 있는 네이버 의존적 콘텐츠 유통 시스템, 독자들이 외면해도 광고주들을 쥐어짜면 생존할 수 있는 한국적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 등. 윤 대표는 "매스미디어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면서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 2년차를 맞으면서 많은 언론인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워터게이트 못지않은 엄청난 사건이 연달아 터졌는데도 여론은 무덤덤하고 역사는 오히려 퇴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론은 끝없이 주장을 쏟아내고 현실에 개입하려 하지만 전통적인 뉴스 플랫폼은 여론의 네트워크에서 겉돌고 있거나 고립돼 있다.

 

과거에는 뉴스가 완결된 형태로 배달됐지만 페이스북에서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보면 어떤 뉴스가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는 거미줄처럼 얽히고 얽힌 관계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아무리 좋은 뉴스라도 관계 네트워크에 녹아들지 않으면 독자들을 만날 수 없다. 이 말은 곧 관계 네트워크를 파고드는 뉴스가 좋은 뉴스고 그런 뉴스가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도 된다.

 

뉴스는 트위터 리트윗이나 페이스북 좋아요, 카카오톡이나 라인으로 주고 받는 링크, 커피 자동판매기 앞에서의 짧은 대화를 통해서 확산된다. 하나의 사건이 단발성 뉴스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뉴스가 다른 뉴스와 연결되고 새로운 실마리를 끌어내고 서로 영향을 미치고 진화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걸 우리는 날마다 지켜보고 있다. 같은 뉴스라도 누가 추천하느냐에 따라 어떤 맥락에서 이해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뉴스가 된다.

 

당장 페이스북 좋아요를 백배 천배로 늘리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 입소문 마케팅을 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끊임없이 뉴스를 다시 구성하고 구조화하는 동시에 꾸준히 독자들의 신뢰를 쌓는 콘텐츠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윤 대표는 "일방적으로 뉴스를 던져주던 시대는 지났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뢰가 콘텐츠의 상품성을 만들지만 이 말은 거꾸로 상품성 있는 콘텐츠가 신뢰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도 된다.

 

네이버라는 강력한 플랫폼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네이버가 언론사들을 먹여살릴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뉴스스탠드 개편 이후 트래픽이 크게 줄기도 했고 뉴스스탠드와 무관한 모바일 접속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애초에 네이버에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고 네트워크와 유기적 연결을 강화하고 관계를 확장하라는 윤 대표의 조언이 솔깃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윤 대표는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는 사용자의 활동과 요구에 따라 재빠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형태 변이를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면서 "이제 역사는 시간순으로 일어난 이벤트의 합이 아니라 네트워크 구조로 진화될 것이고 데이터 간의 무수한 관계만큼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도 시각도 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새로운 미디어 현상과 새로운 시장의 질서를 받아들이려면 오래된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 (2014. 3. 9. 미디어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