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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 찾아야 할 국가 경영의 지혜

 

영남일보

영화 ‘명량’에서 찾아야 할 국가 경영의 지혜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커
영화를 통해서
국가경영 지혜 배워야

파죽지세다. 역대 최고의 관객 동원 기록이었던 ‘아바타’를 넘어 꿈의 1천500만 관객 돌파를 바라본다. 조선 수군이 겨우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했던 왜군을 물리친 영화 ‘명량’ 얘기다. 무더운 여름의 시원한 소나기처럼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세월호 참사로 의기소침해 있던 국민은 오랜만에 민족적 자부심을 한껏 느꼈다.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이란 말에 큰 위안도 받았다. 국민이 대접을 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둔 조선의 천시(天時)는 불운했다. 전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통제사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함은 물론 제 목숨도 잃었다. 왜군의 모략과 선조 임금의 잘못된 판단으로 명장 이순신은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병사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백성은 겁에 질렸다. 잇단 승리로 왜군은 교만했고 조선은 절박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싸우기에 적절한 때는 아니었다. 적을 유인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지리적인 이점은 나쁘지 않았다. 해남과 진도군을 잇는 울돌목은 넓이가 300m 남짓에 수심은 얕고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형의 유리함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다. 적의 규모에 기죽은 병사들은 잇따라 탈영했고 부하 장수들도 싸울 수 없다고 간청했다.

장군이 숨겨뒀던 비장의 무기는 결국 인화(人和)였다. 먼저 전장에 나가 죽기를 각오로 싸우는 모습을 통해 비로소 부하 장수와 백성은 혼연일체가 됐다. 맹자가 말했던 것처럼 “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고 했던 것을 몸소 증명했다. 국가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요소가 무엇이며 그중에서도 왜 인화가 으뜸인지도 잘 보여줬다.

1597년과 2014년은 다르지만 한국은 다시 귀로에 서 있다. 당시와 유사하게 시대적 상황은 별로 유리하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갈수록 심각해진다.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한 반발로 북한은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무장을 서두른다. 일본 아베 정부의 집단자위권이 또 다른 무력 침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잠깐 주춤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예고 없이 국내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일본, 아세안 국가들과 한국의 관계도 예전만 못하다.

다행히 형세의 유리함은 상당하다. 홍콩을 비롯해 베트남의 하노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중국의 베이징 등에서 한국은 열광의 대상이다. 한류 드라마와 영화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음식과 자동차와 심지어 카페베네와 파리바게뜨와 같은 기업도 인기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처럼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같은 약자라는 동질감을 갖는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중진국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내부의 단합이라는 결정적인 요소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도 허약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왕과 사대부는 백성을 버리고 먼저 도망을 갔다. 300명이 넘는 학생이 생매장되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멀쩡한 배가 왜 갑자기 뒤집어졌는지, 유병언이 어떻게 죽었는지, 국가적인 재난이 닥친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질문도 용납되지 않는다.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안 내고, 편법으로 재물을 모은 이가 오히려 득세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 모두 ‘명량’을 본 것으로 안다. 자신의 노력을 몰라주는 국민을 야속하게 생각하고 단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유언비어를 더 강력하게 단속해야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볼 일이다. 당신들이 충성하는 대상이 정말 백성이냐고.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만큼의 양심과 능력은 있는가라고.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널리즘학 연구소 (2014. 8. 20.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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