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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당나귀 귀와 대통령의 연애 루머

 

 

임금님의 당나귀 귀와 대통령의 연애 루머

 

중국에서는 지금도 국가의 큰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지난 시절에 일어났던 유사 사례를 먼저 공부한다. 역사는 반복될 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다. 조선의 사대부가 평생을 배웠던 4서5경에 공자가 쓴 역사 해석서 <춘추>가 포함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초의 역사 기록자라는 언론인을 위해 청와대에 마련한 건물의 이름 또한 '춘추관'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얘기는 그래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통일신라 제48대 경문왕. 화랑 출신이었던 그는 공주를 아내로 맞으면서 임금이 된다. 유난히 긴 귀를 숨기고자 머리를 길렀던 그는 급기야 큰 왕관을 맞춰 귀를 덮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왕은 그 임무를 수행한 장인에게 비밀을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한 장인은 속앓이 끝에 병을 얻었고 마침내 대나무 밭에서 그 내용을 목청껏 외쳤다. 명령을 어긴 대가로 그는 죽임을 당했지만 대나무 밭에서는 바람이 불 때 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는 말이 들렸다고 한다.

 

말을 하고 싶은 욕망은 죽음보다 강하다. 진실은 아무리 억압해도 결국 드러난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한다. 이 설화에 담긴 교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훨씬 심각한 정치적 시사점도 담겨 있다. 먼저 왕이 자신의 귀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핏줄이 모든 권력의 원천이었던 골품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나귀의 귀는 혈통의 순수성과 관련된 것으로 왕의 자격을 의심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콤플렉스, 즉 자신의 약점을 다루는 지도자의 역량에 관한 내용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다. 부처님과 유비는 긴 귀를 가졌지만 좋은 리더로 칭송을 받는다. 경문왕은 이를 치부로 생각했고 강제로 입을 막으려고 했다. 당연히 주변을 불신하게 되고, 그 문제만 나오면 과잉반응을 보이며, 자존감을 상실한다. 왕위에 올랐을 때 겨우 15세였고 고위관료의 통제를 받았다. 재위 기간 그는 결국 여러 번 쿠데타에 시달렸고 민심을 잃었다. 대나무가 울면서 그의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대나무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소리를 만든다. 명확한 메시지라기보다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는 점에서 백성이 왕의 약점을 듣고 싶었다는 얘기다. 핏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지도자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딸 진성여왕 말기 892년 태봉과 후백제로 후삼국시대가 열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연애 루머를 둘러싼 지금의 풍경과 어딘가 닮았다.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반응은 누가 봐도 콤플렉스다. 대선 기간 중의 정치개입은 선거개입이 아니라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혈통의 순수성이 당나귀 귀로 인해 의심 받는 것처럼 정권의 정통성은 이미 훼손되었다. 산케이신문의 지국장을 검찰에 고소하는 것 역시 겁을 줘서 진실을 막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대나무 밭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했지만 루머가 확산되는 방식도 유사하다.

 

대통령의 헌신과 애국심은 살피지 않고 유독 이 문제만 보고 들으려고 하는 것 역시 비슷하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아직은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과감하게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고 진실을 통해 정면 돌파 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대나무를 잘라 버리고 산수유를 심는 것처럼 사이버 명예훼손죄 등을 통해 강제로 입을 막을 수도 있다. 경문왕과 그 자손은 망국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과연 2014년 우리의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널리즘학 연구소 연구위원 (2014. 9. 24. 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