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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외롭고 슬프다

<뉴시스>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외롭고 슬프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최근 경질된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외롭고 슬픈 우리 대통령님 도와달라. 꼭 부탁드린다”고 호소하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대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는 비극을 겪었다. 육영재단 운영으로 여동생과는 불화에 시달렸다. 남동생은 마약에 빠졌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소식을 듣자마자 “전방은요?”라는 말했다고 알려져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 총선 지원유세에서 커터칼 테러로 얼굴을 다친 뒤에 병원서 “대전은요”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혼인 박근혜 대통령은 늘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했고 “부모와 자식도 없는 본인에겐 애국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정책적 결정도 최소한 사심은 없는 선택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그러나 삼수 끝에 2013년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국정운영은 상당히 이상했다. 오방낭이 터지고 생명의 나무의 취식은 무속을 연상시켰으나 한국적 모티브를 사용한 것으로 넘길 수 있었다. 내내 이상한 일은 대통령이 ‘유체이탈’식 발언을 일삼고, 정책 제시 등에서 늘 뒷북을 쳤다는 것이다. 장차관은 물론 청와대 수석들도 대통령에게 대면도 못한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사안이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 오전부터 ‘7시간 부재’한 대통령은 그날 오후 5시경에야 모습을 드러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그렇게 구조가 어렵느냐”는 뜬금없는 발언을 했다. 이후 ‘7시간의 부재’를 묻는 국민들에게 청와대와 새누리당, 보수단체와 보수언론들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고 몰아붙이고 이를 보도한 한국 주재 일본 기자를 기소까지 했다. 구조실패에 대한 사과도 한 달 뒤에 했다.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과 일행이 상복처럼 검은 정장을 갖춰 입었는데, 박 대통령이 하늘색 재킷을 입었다.  


이제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각종 이상한 일에 비선실세 ‘최순실’을 가져다 대면 대체로 이해가 된다. “피보다 진한 물도 있다”는 박지만씨의 발언대로, 대통령에게는 가족보다 더한 40년간 인연을 쌓아온 최태민 일가가 있었다. 대통령 대면보고는 비선인 그들이 했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인 ‘암덩어리’ ‘단두대’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물고놓지 않는 진돗개’ ‘우주의 기운’ ‘혼이 비정상’ 등등도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기를 좋아하는 최순실 회장”을 대입하면 이해가 된다. 유체이탈식 화법도 대통령이 ‘공주님’처럼 오만하고 거만한 탓이 아니라, 최태민 목사의 일가가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의상의 색깔까지 지정하며 월 1억2000만원어치의 옷을 대통령에게 대준 사람도 최순실이란다.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사과에서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도 아님이 드러났다.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장광근 의원 등의 입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되면 최태민 일가에 휘둘릴 것이다”는 발언들이 폭로됐었다. 그런데 9년이 지난 지금서야 새누리당 친박은 “젊은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를 거론하면서 “외롭고 슬픈 대통령”을 걱정한다. 이런 트라우마가 족쇄가 될만한 문제적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내놓고 당당하게 국민에게 투표를 권유한 새누리당이나 그를 엄호하거나 지지한 보수언론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것일까? 보수의 애국심은 그리 염량한 것인가. 


대통령에게 5년간 주권을 위임한 유권자들은 박 대통령을 선택할 때 ‘1+1’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국민은 억장이 무너지고, 외롭고 슬프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민주주의는 온다”며 피를 뿌리며 민주 공화국의 가치를 지켜왔던 시민들은, 지난 4년간 사드배치, 개성공단 폐쇄 등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정책에 최순실의 손길과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는지를 묻고 또 물으면서 나라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언론은 이 혼란이 수그러들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각종 정책들을 재점검하고 잘못됐다면 여론을 모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저널리즘학 연구소 연구위원 (2016. 11. 01. 한국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