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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멀지만 가까운 이웃 EU

보통 50이 되면 중년의 위기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나 중년이 됐지만 교류가 매우 활발해지고 있는 관계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의 사이가 그렇다. 1963년 7월 우리는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 EU의 전신)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EEC는 그 당시 통상 분야 등에서 회원국의 정책 권한을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하는 초국가 기구여서 미국과 캐나다 등 비회원국들과 계속해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리는 선진국들의 경제블록이었던 EEC와 교류해 경제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 등을 얻을 목적이 컸다. 이제 EU 27개국과 우리는 초창기의 도움을 주고받던 관계를 벗어나 경제와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고 논의하는 대등한 전략적 동반자가 됐다. 지리적으론 거의 9000㎞ 떨어졌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가까운 이웃이 됐다.


이처럼 가까운 전략적 동반자가 된 것은 양자가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와 EU 간의 관계가 제도적인 틀을 갖춘 것은 1996년 타결된 무역 및 협력을 위한 기본협정과 공동정치선언이다. 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정치 분야의 대화도 정례화해 공동위원회가 구성됐다. 이 협정은 2001년부터 발효돼 양자 국장급 간의 공동위원회가 서울과 EU의 기구가 몰려 있는 브뤼셀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됐다. EU가 1997년 북한의 핵개발 동결을 조건으로 경수로 건설 사업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2003년까지 1억1500만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자한 것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 7월부터 발효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은 EU가 동아시아에서 체결한 최초의 FTA다. EU는 그만큼 동아시아에서 우리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매우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를 맺었다. 협상 개시 후 거의 4년 만에 체결된 양자 FTA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EU와 기본협정 개정을 협상해 2010년 5월에 이를 매듭지었다.


개정된 기본협정에 따라 양자 관계는 더욱 포괄적이고 전략적 관계로 격상됐다. 이에 따라 2010년부터 우리는 EU와 해마다 정상회의를 개최해 왔다. 특히 개정 협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정치분야와 내무 및 사법분야(법무협력, 사이버범죄에서의 협력), 미디어, 교육, 관광 등 많은 분야에서의 협력을 명시해 협력의 폭과 깊이를 강화했다. 양자관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 같은 지역적 차원, 유엔 같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협력을 명시해 사안에 따라 양자가 상시 협력 채널을 만들었다.


대학생들에게 필수 '스펙'의 하나가 된 배낭여행의 제1 목적지는 아직도 유럽이다. 이처럼 유럽의 문화적 실체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정치경제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한 유럽을 우리는 아직까지 잘 모른다. 2010년부터 불어닥친 유로존 재정위기로 유럽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로존은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고 은행동맹의 결성 과정을 앞당기면서 점진적으로 위기를 극복 중이다. EU는 미국, 중국과 함께 국제 정치경제에서 G3의 하나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독일 모델' 배우기 열풍이 일시적인 쏠림현상이 아니라 긴 안목에서 유럽을 제대로 인식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파이낸셜뉴스 2013.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