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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새 지역 리더십 창출의 열쇳말 ‘협동조합’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발전

 

단체장의 투자 유치 실적에

솔깃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역민 생활현장에 밀착한

새로운 지도자상 필요하다

참여·협력하는 협동조합이

수준높은 자치 실현 밑거름

지역개발도 조합간 연계하면

주민에게 고루 혜택 돌아간다

 

지방선거가 일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새로운 유형의 지역 리더십이 관심거리일 것이다. 협동조합 등 최근 생활 현장에서 솟아나는 열기를 지역문제 해결과 발전의 동력으로 이끄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충남발전연구원(원장 박진도)과 함께 사회적 경제 시대에 지역의 새로운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5일 충남 공주에서 개최된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발전’ 콘퍼런스에는 잔루카 살바토리 이탈리아 유럽협동조합·사회적기업연구소(EURICSE) 소장, 제라드 페롱 캐나다 퀘벡주 지역개발협동조합 전 국장, 사와구치 다카시 일본 시민섹터 정책기구 이사장, 송두범 충남발전연구원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이 발표를 했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 그 결과 수백억 달러의 투자 양해각서를 맺어 왔다”는 것이 자치단체장의 단골 자랑거리이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 일이지만 이젠 이런 치적을 내세우면 주민들은 시큰둥해한다. 외자유치 실적은 부풀려지기 일쑤였고, 실제 투자가 이뤄진다 해도 고용이나 세수 증대에서 기대와 달리 효과는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이후 지역의 새로운 리더십은 좀더 지역민의 생활 현장에 밀착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바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같이 사회적 경제를 지역 발전과 접목하는 것이 지역 지도자들의 새로운 과제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법이 발효된 뒤 불과 6개월 만에 전국에 12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마을만들기 등 지역사회의 자활과 협동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지방자치 활성화와 발전의 동력으로 엮어 낼지는 고민이 필요한 과제다.


120년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트렌티노의 협동조합 사례를 소개한 살바토리 소장은 협동조합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높은 수준의 자치를 실현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과 지역자치는 ‘찰떡궁합’이란 얘기인데, 참여와 협력의 협동조합 정신이 지역자치를 살찌우고, 이는 다시 사회적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이탈리아 북부 척박한 산간지역에 있는 트렌티노는 1800년대 후반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으나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면서 지금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연합 내에서도 잘사는 지역이 됐다. 주민 52만4000명 중에 협동조합원이 27만명이다. 이 지역 고용의 14%, 지역 총생산의 15%를 협동조합이 차지한다.


트렌티노는 1946년부터 3단계에 걸쳐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이양받아 폭넓은 입법 및 행정권을 행사하는 자치지역이 됐다. 살바토리 소장은 이런 권한위임이 먼저가 아니라 협동조합이 발달하며 생긴 자치역량과 끈적끈적한 사회적 유대가 수준 높은 자치를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올해 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거주하는 동네에는 21%, 자신이 거주하는 시에는 28%의 소속감을 느끼는 데 반해 국가에 대해서는 10%, 지역(광역단체에 대당)에 대해서는 11%로 소속감이 약했다.


살바토리 소장은 협동조합을 늘 지역개발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협동조합으로 얻은 자율성을 공공제도로 연결해 낼 것을 권고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늘 변화하는 조직이란 생각이 필요하다”며 협동조합의 혁신을 잊지 말 것을 주문했다.


페롱 전 국장은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지역발전으로 연결시키는 데도 협동조합을 활용한 캐나다 퀘벡주의 성공 경험을 소개했다. 지역개발협동조합(Regional Development Cooperatives: RDC)은 협동조합의 협동조합으로 퀘벡주에 11개가 있다. 아르디시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역 내 서로 다른 협동조합들이 공동의 지역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무엇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수많은 회합과 토론을 통해서 발굴하고 공유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동의가 이뤄지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또다른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이 역시 아르디시가 주도해서 지원한다.


한 예로 1990년대 이래 퀘벡 지역에서는 집에 누워 있는 고령자나 장애인을 돌보는 개호서비스가 상당수 협동조합원들의 관심사였다. 이에 따라 아르디시 주도 아래 은행, 보험, 식품, 유통같이 발전된 부문의 협동조합이 힘을 합쳐 12개의 개호서비스협동조합이 만들어지도록 도왔다. 그 결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1000개 이상의 지역 일자리도 창출됐다.




>>> 한겨레 협동조합학교 개설

‘한겨레 협동조합학교’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협동조합의 성격 이해부터, 협동조합의 원칙, 비즈니스 모델 구축, 운영 방법, 설립에 필요한 실무절차까지 협동조합의 청사진을 함께 그려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 강사진 : 한겨레경제연구소(HERI) 연구원

● 기간 : 2013년 8월26일(월)~11월4일(월), 총 11회

● 시간 : 매주 월요일 19:30~22:00

● 장소 : 한겨레교육문화센터(신촌)

● 수강료 : 38만원

● 문의·신청 : 한겨레교육문화센터(02-3279-0900)


 

협동조합 선진국인 이탈리아나 캐나다와 달리 일본이나 한국은 지역개발과 협동조합의 연계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란 평가가 나왔다. 일본에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선정하는 ‘글로벌 300’에 13개 협동조합이 들어갈 정도인데다, 동일본대지진 직후 일본의 협동조합들은 2조원이 넘는 경제적 지원을 하고 거의 반년 동안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고립된 난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일을 하는 등 외견상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사와구치 이사장은 “이런 것을 일본인 거의 대다수가 잘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협동조합이 이런 활동뿐 아니라 본연의 사업을 통해 공동체나 지역사회에 녹아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충발연 송두범 박사는 “충남 도민의 60% 이상이 조합원일 만큼 개인적으로 협동조합과 긴밀하게 얽혀 있지만, 지역사회 발전 수단으로의 활용은 미흡한 상태”라며 “(농협 등) 기존 협동조합은 정체성이 미약하고 새로 생겨난 협동조합은 비교적 영세한 것도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협동조합으로 조성된 문화가 지역의 자치역량을 높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고, 지역과 연계를 확대하기 위해 퀘벡에서와 같이 협동조합의 협동을 돕는 중간 조직도 협동조합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 201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