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자교과서
모기와 유언비어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새출발, 새옷 등 새롭다가 붙은 모든 단어는 그 자체로 즐겁고, 풋풋하고, 상큼하다.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추위에 떨며 해돋이를 기다리는 마음은 부족하고 아쉽고 온전하지 못했던 것과 단절하고 뭔가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독하게 결기를 다진다고 해도 과거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면 동일한 오류를 답습하는 게 인간이다. 달뜬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 한편으로 역사적 교훈을 놓치지 않는 열린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첫해인 2013년 한국 사회는 다시 유언비어 논란에 휩싸였다. 연초부터 불거진 국가기관의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더니 급기야 연말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대자보가 등장했다. 땡전뉴스가 기승을 부릴 때 유비(유언비어)통신으로까지 불렸던 대자보가 30년의 시차를 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둘러싸고 정부는 때아닌 민영화 괴담에 놀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언비어 대응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매서운 단속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유언비어를 날조하거나 공포하면 법관의 영장 없이 구속할 수 있다고 했던 1974년의 긴급조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두환정부가 버스와 택시 기사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악성 유언비어 포상제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7년 국가 부도설을 보도했던 외신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던 김영삼정부는 오히려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국제사회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유언비어의 본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오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언비어는 모기처럼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명체다. 인근 습지와 웅덩이를 무대로 모기가 번식하는 것처럼 유언비어는 정부에 대한 불신, 강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 강요된 침묵을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각종 쓰레기와 오물이 모기에겐 오히려 축복인 것처럼 공동체 전반에 거짓, 불신, 차별, 부당함과 비리가 축적될 때 어김없이 출현한다. 모기가 유독 제때 씻지 않고 땀에 범벅이 된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스스로 신뢰를 상실한 조직과 개인을 대상으로 유언비어도 집중된다. 통풍이 잘 되고 확 트인 공간보다는 밀폐되고 어두운 공간을 더 좋아한다는 것 역시 둘의 공통점이다.
물론 유언비어는 온전한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완전한 거짓말도 아니다. 컵에 절반 정도 담겨 있는 물을 보고 반이 비었다고 하는 것이나, 반이 찼다고 하는 것 모두 틀리지 않다. 물을 채우던 입장에서는 반이 빈 것이 맞지만 버리던 입장에서는 반이 남았다고 해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공기업 개혁은 진리고 노조가 말하는 철도 민영화는 거짓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물을 채우던 중인지 버리던 중인지를 알면 다투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각자의 입장과 주장을 말하게 하면 된다. “진리가 허위와 맞붙어 논쟁을 하도록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고 존 밀턴이 주장했던 까닭이다.
모기가 성가신 존재인 것처럼 유언비어는 공동체를 좀먹는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고, 정부는 국민을 감시할 때, 불신과 두려움은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모기의 서식처를 없애고 몸을 청결하게 하면 모기의 성가심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면서, 또한 물처럼 말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할 때 유언비어도 발붙일 곳을 잃는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이는 제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유언비어가 기승을 부리는 이 불온한 시대에 정부의 높으신 어른들께 더 현명해 주십사 부탁하면 연초부터 결례가 되는 것일까?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4. 1. 8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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