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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

영남일보

 

박 대통령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

 

선생님! 낯설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흔한 호칭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면 지역사회의 어른일 것도 같습니다. 자칫 역린을 건드릴 수도 있는 부탁을 하는 처지라 보다 정중한 표현을 택했습니다. 대학에서 애들을 가르쳐야 하는 제 입장을 혜량해 주십사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양치기 소년 얘기를 기억하시는지요? 그리스인 이솝이 동물의 얘기에 빗대어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든 우화입니다. 동네 어른들은 다른 곳에서 일을 해야 했기에 망을 보는 일은 소년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건너편 수풀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확인도 하지 않고 “늑대야!”라고 소리를 질렀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아이는 잠깐 동안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거짓말을 했고, 결국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았죠. 거짓말쟁이에게 최고의 벌은 진실을 말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때와 꼭 같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도 양치기는 존재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에 보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국가공동체가 소중하게 여기는 ‘헌법, 국가, 평화, 통일, 자유, 복리, 민족문화’와 같은 양을 잘 지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었습니다. 정부의 책임자로 인사권을 행사하고, 군대와 경찰을 지휘하며, 내란과 같은 중범죄가 아닌 경우에는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경우에는 양치기 소년처럼 책임을 지겠다는 신성한 계약입니다.

 

이솝 우화의 양치기
오늘날에도 존재해
양 지키는 데 필요한
정의도 죽어가고 있어
신뢰 망가뜨려

 

선생님, 박 대통령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냐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랫사람이 잘못했고, 세월호 참사는 불가항력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볼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박 대통령이 양을 잃어버린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대선 때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을 방치함으로써 공정선거라는 소중한 양이 이미 죽었습니다. 법치주의라는 양도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 기관이 증거를 위조하고 현직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불법으로 개인 정보를 노출시켜도 법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양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정의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이 준 세금으로 외국에 나가 성추행한 대변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기밀을 폭로한 국회의원, 출세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비서실장이 잘나가는 세상입니다. 국무총리가 될 사람이 남들은 평생 구경도 못할 돈을 몇 달 만에 버는 것을 보면서 공정한 세상이라고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양을 죽이거나 방치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동체의 뿌리가 되는 신뢰를 망가뜨렸다는 것입니다.

 

양치기 소년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지도 않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막지도 않았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와 달리 공영방송을 동원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습니다. 검찰과 경찰을 시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소수를 감시하고 겁박합니다. 무조건 자신만 믿으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지킨 약속이 없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만 하더라도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은 정부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양치기를 맡은 동안 정부에 대한 신뢰는 주요 32개 선진국 중에서 꼴찌에 가까운 28위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허물을 무조건 감싸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전쟁이 나거나 외환위기가 다시 닥쳤을 때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선생님! 지금은 박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줄 때가 아니라 더 호되게 꾸짖을 때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