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악어의 눈물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은 어떤 눈물일까. 지난 5월 19일 박 대통령이 세월호에 관한 대국민담화 중에 흘린 눈물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 진정성에 관한 논란이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34일 만에야 흘린 눈물이지만, 그 ‘효과’에 관한 것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미 그는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TV연설 중 흘린 눈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역풍에 침몰하던 한나라당을 구한 바 있다. 가깝게는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흘린 눈물 역시 마찬가지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조기 등판한 그는 한나라당의 간판마저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파란색의 로고를 빨간색으로 바꿀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그 풍파를 헤치고 새누리당을 단독과반의 제1당으로 만들었다.
이번 눈물 역시 6.4 지방선거의 풍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눈물은 이미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회복의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다. 지지층 결집에도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의 눈물은 지방선거전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대통령께서 눈물을 닦고 국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고 강조, 그 속내를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로 비판받는 배경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 백과사전은 ‘악어의 눈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거짓 눈물 또는 위선적인 행위를 일컫는 용어. 이집트 나일강(江)에 사는 악어는 사람을 보면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셰익스피어도 ‘햄릿’ ‘오셀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 여러 작품에서 이 전설을 인용하고 있다. 이처럼 먹이를 잡아먹고 거짓으로 흘리는 악어의 눈물을 거짓눈물에 빗대어 쓰기 시작하면서 위선자의 거짓눈물, 교활한 위정자(爲政者)의 거짓눈물 등을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설마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이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계속되는 언론의 참상에 대한 그의 태도는 ‘악어의 눈물’로도 그 표현이 부족할 만큼 위선적이고 교활하다. 세월호의 참사는 언론의 참상을 보여준 거울이었다. 특히 국가 재난방송 주관사인 한국방송공사(KBS)가 맞고 있는 위기도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지 않다. 세월호 유족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퇴한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 따르면 청와대의 KBS에 대한 보도통제는 전두환 시대의 보도지침을 무색케 한다. ‘해경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라’는 통제는 그 하나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방송장악을 할 의도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약속에 대해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청와대의 방송에 대한 보도통제가 얼마나 극심한가를 보여준 사례가 이번의 KBS사태다. KBS 새노조는 물론 간부들까지 나서 청와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다. 물론 이 배후에는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가 자리하고 있다. 길환영 사장도 그 중 한사람일 뿐이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시도한 YTN장악이 그 모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전후에 실시한 언론관련 기관 인사도 같은 맥락이다. 오히려 언론통제와 장악의 강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 셈이다. 얼마 전 ‘미디어오늘’은 방송사의 인허가권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영·민간방송 심의와 징계권을 가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세월호 관련보도를 조정·통제해왔음을 폭로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초 방송통신위원장에 방송 전문성과는 무관한 법조계 인사를 앉힘으로써 법적 통제의 수단을 강화하는 모양새였다. 이어 5월 15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박효종 서울대 교수를 내정했다. 그는 심의위원장으로서는 적절치 못한 경력의 소유자다. 박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캠프에서 활동했으며 인수위원회의 정무분과 간사를 지냈다. 그는 또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지칭하기도 한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녀야 할 심의위원장으로서는 결격사유가 아닐 수 없다. 지난 4월29일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된 판사출신 박용상 전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은 5공시절 대표적 언론악법인 언론기본법을 만든 장본인 중의 한사람이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재산이다. 특정 정권이나 단체 혹은 특정인이 방송을 사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방송이 무엇보다 공익과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의 방송장악이 초래한 불행은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측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이 어떤 눈물인가는 이처럼 여러 가지 관련된 인과관계에서 검증될 수밖에 없다.
김광원 언론인/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소장 (2014. 5. 28.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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