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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공주님을 벌해야 하는 이유

양치기 공주님을 벌해야 하는 이유

 

모든 권력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듦으로서 지배를 정당화 시킨다. 평생 노예로 산 사람은 다른 삶을 알지 못하기에 또 일상의 노동으로 인해 생각할 여유가 없기에 또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해 저항하지 못한다. 국제정치, 경제, 금융 등이 어려운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냉정하게 문제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온갖 어려운 전문용어로 뒤덮여 있다. 그리스인 이솝이 동물 우화라는 방법을 통해 정치에 개입했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권력이라는 외피에 의해 가려진 실체를 밝히는 것은 정직한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 역시 별로 안 복잡하다.

 

누구나 양치기 소년의 얘기는 안다. 동네 어른들은 다른 곳에서 일을 해야 했기에 망을 보는 일은 어린 소년에게 주어졌다. 그는 건너편 수풀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확인도 하지 않고 "늑대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아이는 잠깐 동안 신이 났다. 그래서 몇 번이고 거짓말을 했고 결국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거짓말쟁이에게 최고의 벌인 진실을 말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사태가 생겼다. 그때와 꼭 같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도 양치기는 존재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위임했고 신의와 성실의 계약에 의한 관계라는 점은 다르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에 보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가공동체가 소중하게 여기는 '헌법, 국가, 평화, 통일, 자유, 복리, 민족문화'와 같은 양을 잘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정부의 책임자로 인사권을 행사하고, 군대와 경찰을 지휘하며, 내란과 같은 중범죄가 아닌 경우에는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경우에는 양치기 소년처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도 당연히 내포되어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폭식 행사를 벌이는 일부는 공주님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사 참사는 비서실장이 책임을 져야 하고 세월호 참사는 불가항력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7시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청와대를 떠나지 않았고 보고도 받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달리 볼 부분이 많다. 우선 공주님이 양을 잃어버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을 방치함으로써 공정선거라는 소중한 양이 이미 죽었다. 대선 기간 중에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말은 소가 웃을 일이다. 법치주의라는 양도 생명이 위태롭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 기관이 증거를 위조하고 현직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불법으로 개인 정보를 노출시켜도 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은밀한 정보를 통해 특종을 한 모 언론사는 기자상까지 받았다.

 

양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정의도 죽어가고 있다. 국민이 준 세금으로 외국에 나가 성추행한 대변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기밀을 폭로한 국회의원, 출세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비서실장이 잘 나가는 세상이다. 국무총리가 될 사람이 남들은 평생 구경도 못할 돈 1억을 하루 만에 버는 것을 보면서 공정한 세상이라고 믿을 사람은 없다. 모두 청와대만 바라보도록 만든 다음에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하는 동안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 속에 생매장 되었다. 그러나 양을 죽이거나 방치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동체의 뿌리가 되는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양치기 소년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지도 않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막지도 않았다. 공주님은 이와 달리 공영방송을 동원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다. 검찰과 경찰을 시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소수를 감시하고 겁박한다. 자신의 거짓말도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지키는 약속이 없다. 이번 세월호 참사만 하더라도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은 정부였다. 공주님이 양치기를 맡은 동안 정부에 대한 신뢰는 주요 32개 선진국 중에서 꼴찌에 가까운 28위로 떨어졌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말이 있다. 공주님의 허물을 무조건 감싸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전쟁이 나거나 외환위기가 다시 닥쳤을 때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가안보가 위태롭고 지나간 일이라고 묻어둘 성질이 아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하원으로부터 탄핵을 당했다. 그가 조사를 받는 동안은 베트남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재선에 성공할 만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재선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도청과 불법선거 운동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지 못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현직 대통령보다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정의와 진실과 상식이 숨을 쉴 수 없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는 공감대 역시 작용했다. 지금은 공주님의 눈물을 닦아줄 때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엄격하게 벌을 줘야 할 때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널리즘학 연구소 연구위원 (2014. 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