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저널리즘 운동을 주도했던 나이트-라이더 신문 본사, 최근 맥카시 신문그룹에 매각됐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국내 일부 신문들은 요즘 자사의 이해관계에 근거해 특정 대선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옹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언론은 권력의 감시·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넘어 대선에 직접 개입하면서 권력화·상업화의 길을 걸어 점차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언론이 진정으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공공 저널리즘을 실행할 수는 없는가. 언론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공중이 주인이 되는 ‘공공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은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유럽 등지에서 실행되고 있다. 미국의 샬럿 옵서버 신문과 탤러하시 데모크랫 신문 등 공공 저널리즘의 현장을 최근 다녀온 한국언론재단의 김성해 연구위원과 문답 형식으로 이 문제를 짚어본다.
-공공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언론이 공중(公衆)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월터 리프만)에서 벗어나 국민이 스스로 민주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존 듀이)에서 출발한다. 공공 저널리즘은 언론이 권력의 견제·감시의 임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권력기구가 되어 국가·주·지역공동체에 대한 봉사에서 유리돼 군림하는 데 대한 반발에 근거한다.
언론이 그들만의 의제를 세우자 이에 맞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의 의제’를 설정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전략가와 여론조작자들에 의해 정치가 희극화되고, 정치과정에서 대중이 소외돼 정치가 사유화됐다. 이처럼 이슈보다 이미지 중심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문제 의식이 싹텄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구독자가 줄자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신문들은 폐쇄적이던 편집회의를 개방했고, 언론·공중·정치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화했다. 그들은 공공 의제를 미디어 의제로 세웠으며, 취재 관행을 바꾸어 그동안 소외됐던 목소리를 지면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샬럿 옵서버’(The Charlotte Observer,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와 ‘탤러하시 데모크랫’(Tallahassee Democrat, 플로리다주 탤러하시)의 현장 방문을 통해 살펴본 공공 저널리즘의 모습은.
“이들 지역신문은 ‘버지니아 파일럿’이나 ‘위치타 이글’ 등과는 달리 신문사가 지역적 의제 설정에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편집 방향이나 의제 설정에서 일반 시민의 목소리를 대폭 수용했다. 직접 공청회를 열기보다 공청회 개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공청회를 보도하는 등 간접 개입에 머물렀다. 하지만 탤러하시 데모크랫은 빈민문제 해결을 위해 봉사요원에 과도하게 의존했고 백인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다가 지역 소외계층을 더 소외시켰다고 비판받은 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는 공공 저널리즘에 대해 객관성과 균형성을 상실한다고 비판하지만 공공 저널리즘은 지역 밀착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을 실행하려면 기자들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들의 공공 저널리즘을 어떻게 평가하나.
“언론이 권력화된 한국 상황에서 보면 공공 저널리즘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공 저널리즘의 정신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 기자들이 언론의 공적 서비스 문제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공 저널리즘은 언론의 존재 가치를 보여준다. 국내 보수지들은 공중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국민의, 국민을 위한’ 의제를 생산하고 현안 해결을 위해 정치인·정부·이해집단·기업·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도 공공 저널리즘이 있는지.
“1990년대 중반 이래 일본·호주·뉴질랜드·덴마크·핀란드·스웨덴 등지에서 실행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95년 시민들이 정당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심층으로 보도하면서 정당인들의 답변을 동시에 실었다. 2002년에는 ‘시민복지섹션’ 프로젝트에서 커뮤니티 포럼을 열어 도호쿠(東北) 지역의 소아과 의사 부족 문제를 다뤄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도록 이끌었다.”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은.
“현재 공공 저널리즘은 대체로 중소 도시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전국지·지방지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권력화·상업화로 인해 공익으로부터 유리된 우리 언론의 상황에서 응용 가능성은 높다. 예컨대 언론재단이 지원하고 몇 개 신문이 적극 나서면 충분히 가능하다. 현재 국내에서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있는 만큼 지역 단위에서도 공공 저널리즘이 가능하다. 이것을 위해 지역주민을 위한 담론의 공간을 운영할 지역전문기자들의 양성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설원태 선임기자)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국내 일부 신문들은 요즘 자사의 이해관계에 근거해 특정 대선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옹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언론은 권력의 감시·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넘어 대선에 직접 개입하면서 권력화·상업화의 길을 걸어 점차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언론이 진정으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공공 저널리즘을 실행할 수는 없는가. 언론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공중이 주인이 되는 ‘공공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은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유럽 등지에서 실행되고 있다. 미국의 샬럿 옵서버 신문과 탤러하시 데모크랫 신문 등 공공 저널리즘의 현장을 최근 다녀온 한국언론재단의 김성해 연구위원과 문답 형식으로 이 문제를 짚어본다.
-공공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언론이 공중(公衆)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월터 리프만)에서 벗어나 국민이 스스로 민주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존 듀이)에서 출발한다. 공공 저널리즘은 언론이 권력의 견제·감시의 임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권력기구가 되어 국가·주·지역공동체에 대한 봉사에서 유리돼 군림하는 데 대한 반발에 근거한다.
언론이 그들만의 의제를 세우자 이에 맞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의 의제’를 설정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전략가와 여론조작자들에 의해 정치가 희극화되고, 정치과정에서 대중이 소외돼 정치가 사유화됐다. 이처럼 이슈보다 이미지 중심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문제 의식이 싹텄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구독자가 줄자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신문들은 폐쇄적이던 편집회의를 개방했고, 언론·공중·정치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화했다. 그들은 공공 의제를 미디어 의제로 세웠으며, 취재 관행을 바꾸어 그동안 소외됐던 목소리를 지면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샬럿 옵서버’(The Charlotte Observer,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와 ‘탤러하시 데모크랫’(Tallahassee Democrat, 플로리다주 탤러하시)의 현장 방문을 통해 살펴본 공공 저널리즘의 모습은.
“이들 지역신문은 ‘버지니아 파일럿’이나 ‘위치타 이글’ 등과는 달리 신문사가 지역적 의제 설정에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편집 방향이나 의제 설정에서 일반 시민의 목소리를 대폭 수용했다. 직접 공청회를 열기보다 공청회 개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공청회를 보도하는 등 간접 개입에 머물렀다. 하지만 탤러하시 데모크랫은 빈민문제 해결을 위해 봉사요원에 과도하게 의존했고 백인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다가 지역 소외계층을 더 소외시켰다고 비판받은 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는 공공 저널리즘에 대해 객관성과 균형성을 상실한다고 비판하지만 공공 저널리즘은 지역 밀착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을 실행하려면 기자들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들의 공공 저널리즘을 어떻게 평가하나.
“언론이 권력화된 한국 상황에서 보면 공공 저널리즘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공 저널리즘의 정신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 기자들이 언론의 공적 서비스 문제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공 저널리즘은 언론의 존재 가치를 보여준다. 국내 보수지들은 공중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국민의, 국민을 위한’ 의제를 생산하고 현안 해결을 위해 정치인·정부·이해집단·기업·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도 공공 저널리즘이 있는지.
“1990년대 중반 이래 일본·호주·뉴질랜드·덴마크·핀란드·스웨덴 등지에서 실행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95년 시민들이 정당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심층으로 보도하면서 정당인들의 답변을 동시에 실었다. 2002년에는 ‘시민복지섹션’ 프로젝트에서 커뮤니티 포럼을 열어 도호쿠(東北) 지역의 소아과 의사 부족 문제를 다뤄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도록 이끌었다.”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은.
“현재 공공 저널리즘은 대체로 중소 도시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전국지·지방지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권력화·상업화로 인해 공익으로부터 유리된 우리 언론의 상황에서 응용 가능성은 높다. 예컨대 언론재단이 지원하고 몇 개 신문이 적극 나서면 충분히 가능하다. 현재 국내에서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있는 만큼 지역 단위에서도 공공 저널리즘이 가능하다. 이것을 위해 지역주민을 위한 담론의 공간을 운영할 지역전문기자들의 양성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설원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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