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서의 발전
아마티아 센 지음, 김원기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3)
60년대 이후의 역사를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각축과 성취로 보는 시각은 흥미는 있을지 모르나 실상을 왜곡할 수 있다.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며 든 이유중 하나는 기존 교과서가 산업화를 민주화에 비해 소홀이 다루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신문은 며칠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담한 3당 합당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 였다는 억지스런 평가를 하기도 했다. 이런 얘길 들으면 역사의 무대에 두 세력에게 부여된 역할이 있었고, 산업화 세력은 경제발전으로 몫을 다한 것이란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정치적 억압이 불가피하거나 ‘경제발전 먼저, 민주주의 나중’이란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경제사 연구는 경제발전에 독재가 유리한 지 민주주의가 유리했는 지를 아직 확정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다시 생각케 하는 책이다. 저자는 발전이 단순히 국내총생산(GDP) 의 성장이나 소득의 증가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인도 벵골에서 태어나 빈곤, 기아, 불평등 연구에 매진해 온 센에게 발전은 인간 가능성의 실질적인 확장이다. 센 교수가 참여해 만든 유엔 인간개발지수(HDI)가 매년 발표되듯, 발전을 평가할 때 교육이나 보건 같은 경제성장 이외의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발전을 이렇게 정의할 때 민주주의는 발전의 내용 그 자체이자 지속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밝히고 이를 정치과정에 반영하는 것은 누구나 갈구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이다. 또 이를 통해 얻어진 건강한 신체, 지식과 숙련, 투명한 거래 같은 것들은 경제성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공론의 장에서 구성원이 서로 배우면서 지적 및 윤리적 발전을 이뤄간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교육적 역할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유보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음에도‘ 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박정희 시대의 성장을 좀 더 뜯어볼 필요가 있다. 긴급조치와 인권유린, 노동탄압 등 정치적으로는 폭압적이었지만 이 시기에 이룬 평균수명의 연장이나 문맹률 하락에서 보듯 보건이나 교육의 개선은 꾸준했다. 발전의 관점에서 센이 한국의 산업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이런 요소들이 경제성장과 상승효과를 냈을 수 있다.
또 산업화 이후가 아니라 경제개발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외친 저항세력의 역할도 평가해야 한다. 센은 한국이나 칠레 등에서는 잘 작동했던 사회적 프로그램 상당수가 부분적으로는 야당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비타협적인 야당이 국가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효율적이게 했다"고 평가한다.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진보적 성격을 이렇게 인정한다 해도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의 열정적 참여의 기원은 훨씬 이전부터 국민의 가슴속에 움터온 것일 수 있다. 50년대 이전부터 ’우골탑’으로 상징되는 교육열은 유별났고, 언론자유의 신장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열매를 맺은 것이 4.19 민주혁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위원 (2015. 11. 26.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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