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복원은 과거의 흔적을 단순히 되살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형상으로 완전히 재현되지 못한 정신의 원형을 발굴하고, 그 정신을 지금의 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용하고, 나아가 본질에 적합한 형태로 끝없이 수정하는 작업을 모두 포함한다. 한국 저널리즘의 복원은 따라서 구한말 이후 등장한 초기 저널리즘의 본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그 이후 일제 강점기와 군사 정권을 지나면서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되었는지, 민주화 이후 어떻게 진화했고, 지금 상황에 맞는 언론다운 언론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포함하는 작업이다. 한국 저널리즘의 역사를 100년으로 잡았을 때 그 본질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의 발간사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독립신문의 발간사에는 다음과 같은 장문의 내용이 나온다. 오늘날 언론에도 시사하는 바가 참 많다.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 귀천을 달리 대접 아니하고 모든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며 공평히 인민에게 말할 터인데 우리가 서울 백성만 위할 게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조언하여 주려함. 정부에서 하시는 일을 백성에게 전할 터이요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할 터이니 만일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만이 있을 터이요 불평한 마음과 의심하는 생각이 없어질 터이옴. 우리가 이 신문 출판하기는 취리(取利)하려는 게 아닌 고로 값을 헐하도록 하였고 모두 언문으로 쓰기는 남녀 상하 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요 또 귀절을 띄어쓰기는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라. 우리는 바른 데로만 신문을 할 터인 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사사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이옴. 우리는 조선 대군주 폐하와 조선 정부와 조선 인민을 위한 사람들인 고로 편당있는 의논이든지 한쪽만 생각코 하는 말은 우리 신문상에 없을 터이옴. 또 한쪽에 영문으로 기록하기는 외국 인민이 조선 사정을 자세히 모른 즉, 혹 편벽된 말만 믿고 조선을 잘못 생각할까 보아 실상 사정을 알게 하고자 하여 영문으로 조금 기록함. 그러한 즉 이 신문은 꼭 조선만 위함을 가히 알 터이요, 이 신문을 인연하여 내외 상하 남녀 귀천이 모두 조선 일을 서로 알 터이옴. 우리가 또 외국 사정도 조선 인민을 위하여 간간히 기록할 터이니 그걸 인연하여 외국은 가지 못하더라도 조선 인민이 외국 사정도 알 터이옴. 오늘은 처음인 고로 대강 우리ㅣ 주의만 세상에 고하고 우리 신문을 보면 조선 인민이 소견과 지혜가 진보함을 믿노라
서재필... 당시 독립신문을 창간했던 주역이다. 갑신정변 이후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다. 한국인으로서 개혁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또 의사로서 그가 한평생 무엇을 고민하고 아파했을까?
그가 살던 곳은 펜실베니아대학에 잘 보관되어 있다. 아래는 명문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펜실베니아대학의 사진이다. 필라델피아에 있다. 필라델피아는 강변에 있는 오래된 도시다. 미국 독립을 선언한 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