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NSA 도·감청 폭로 보도’ 날개를 달다
신문과 방송
2014년 퓰리처상 수상한 워싱턴포스트·미국판 가디언
‘미 NSA 도·감청 폭로 보도’
날개를 달다
“워싱턴포스트와 미국판 가디언이 미국 국가안보 국(NSA)에 의한 비밀스럽고도 광범위한 감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비밀문건에 근거해 행한 보도의 가치가 인정받았다. 이 폭로 보도를 계기로 미국 정부는 그를 간첩법 위반으로 기소했지만, 동시에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와 자유 사이의 올바른 균형이 무엇인지에 관해 국민적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두 신문은 스노든이 유출한 자료를 사용해 미국 정부가 국내 및 국제 소통을 추적하도록 허용하는 비밀스러운 법원 판결 및 감시 전술을 천하에 폭로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미국판 가디언에 대한 퓰리처상위원회의 시상 이유(2014. 4.14)
한국을 포함한 지구촌의 여러 나라와 개인(박근혜대통령도 포함됐음)을 상대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던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정당성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정보 수집을 위해 거의 무제한으로도・감청하던 NSA 활동에 대한 폭로 보도가 정당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퓰리처상위원회는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 할 필요가 있다”는 NSA의 논리를 거부하고 그 대신 NSA의 도청과 감청 실태를 보도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영국 가디언(미국판)을 2014년 저널리즘의 공공서비스 부문 퓰리처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WP, 취재팀에 28명 기자 투입
미국 뉴욕주 소재 컬럼비아대학의 퓰리처상위원회(19명으로 구성)는 4월 14일 저널리즘에 관련된 이같은 시상 내용을 비롯해 모두 20개 영역에 걸친 수상자를 발표했다. 퓰리처상이 비록 미국 대중매체에 주는 상이긴 하지만 저널리즘 및 대중문화에 관한 한 국제적 명성이 있는 상인만큼 이 소식은 수상자의 소속 언론사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이번 시상은 뉴욕타임스가 펜타곤페이퍼를 보도한 이후 40여 년 만에 또 다시 ‘국가안보냐 언론보도냐’를 둘러싼 논란을 일으켰다. 아울러 퓰리처위원회가 ‘국가안보’라는 미국 정부의 취약한 주장보다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국 언론을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지구촌의 여러나라 언론에서도 미디어 부문의 중요 소식으로 보도됐다. 이번에 워싱턴포스트가 영광스러운 퓰리처상 공공서비스 부문 메달을 받은 것은 일련의 보도를 통해 NSA가 수행한 대규모의 지구적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했다는 공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도를 위해 28명의 기자가 하나의 팀으로 취재에 참여했고, 바턴 젤먼 기자는 취재팀장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에 영국 가디언 신문의 미국판도 NSA의 비밀스런 정보수집 활동을 폭넓게 보도함으로써 동일한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 이유를 보면, 워싱턴포스트의 젤먼과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NSA 관련 보도 당시 수석기자)는 미국 정부의 계약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그는 보도를 계기로 러시아로 망명했다)이 의도적으로 유출한 비밀 문건을 근거로 보도를 감행했다. 포스트는 14일 수상 사실을 정리해 15일 새벽 온라인에 탑재했다.
당일 발표된 다른 언론관련 시상내역을 보면, 워싱턴포스트의 엘리 새슬로는 식량표(food stamp) 를 받아 근근히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의 어려운 삶에 관해 일련의 기사를 보도해 높은 평가를 받아 기획(분석)보도(explanatory-journalism) 부문에서 수상했다. 보스턴글로브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폭넓게 보도한 것을 인정받아 뉴스속보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2개의 사진부문상을 모두 가져갔다. 이 신문의 타일러 힉스 기자는 나이로비 쇼핑몰에서의 테러공격 현장 사진을 찍어 속보사진 부문의 상을 받았고, 조시 헤이너 기자는 특집사진 부문의 상을 받았다. 헤이너는 두 다리를 거의 잃은 보스턴 마라톤의 한 부상자 사진을 찍었다.
탐사보도부문상은 비영리 시민단체인 ‘공공청렴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의 크리스 햄비에게 돌아갔다. 햄비는 진폐증을 앓는 광부들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을 주지 않으려고 직원 복지체계를 조작한 변호사 및 의사들의 비리를 보도한 공을 인정받았다. 이밖에도 미국의 크고 작은 매체(또는 작품)들이 픽션, 드라마 등 여러 부문에 걸쳐 상을 받았다. 퓰리처상의 시상 부문은 14개 언론 부문을 비롯해 픽션 드라마 음악 시 등 7개 대중문화 부문을 합쳐 모두 21개 분야다. 그러나 올해 퓰리처상 특집기사부문에서는 수상자가 없어서 20개 부문에서만시상했다.
펜타곤페이퍼 보도와 닮은 꼴
이번 퓰리처상 시상은 뉴욕타임스가 1971년 펜타곤페이퍼를 보도한 이후 40여 년 만에 또 다시 ‘국가안보냐 언론보도냐’를 둘러싼 중요한 논란을 일으켰다. 아울러 퓰리처위원회가 ‘국가안보’라는 미국 정부의 취약한 주장보다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라는 보편적 논리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들 신문은 유출된 비밀 자료를 근거로 용기있게 보도함으로써 미국과 세계를 안보냐 인권이냐 하는 논란에 휩싸이게 했다. 민간의 퓰리처상위원회가 오바마 행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NSA의 무차별한 정보수집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와 영국의 가디언(미국판)에 퓰리처상을 수여한 것을 계기로 스노든의 이른바 ‘리크게이트’는 더욱 큰 파장을 몰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NSA 도청 보도 당시부터 일어났던 논란이 또 다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사례는 1971년 뉴욕타임스가 펜타곤페이퍼를 보도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을 연상시킨다(주지하듯이 펜타곤페이퍼는 미국 정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베트남전에 개입하게 됐는지를 정리한 비밀 정부 문서이다). NSA 보도를 계기로 오바마 대통령은 정보수집 방법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펜타곤페이퍼 보도 사건의 경우 미국 대법원은 “보도로 인해 미국의 안보가 명백하 게 위협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대해 정당성을 한정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NSA보도에서는 미국 정부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채 유출자인 스노든을 기소했다. 워싱턴포스트의 NSA 보도와 뉴욕타임스의 펜타곤페이퍼 보도는 정부 관계자가 의도적으로 유출한 비밀문서에 근거해 기사를 작성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NSA 문건을 유출한 스노든과 펜타곤페이퍼를 유출한 대니얼 엘스버그는 공통적으로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미국의 보수 인사들은 주요 방송에 나와 스노든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펜타곤페이퍼 보도의 경우 엘스버그가 문건을뉴욕타임스의 닐 시한에게 비밀리에 유출했다. 또한 문건 유출자와 이를 보도한 언론사들은 의원 및 기타 비판자들에 의해 간첩활동을 방조하고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던 점도 공통적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마틴 배런 편집국장은 “NSA 관련 보도는 미국 시민의 헌법적 권리와 세계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 감시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배런 국장은 “NSA에 의한 감시의 광범위한 확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것은 명백히 공공서비스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깜짝 놀랄 만큼 넓은 범위에 걸쳐 사생활을 침해하는 감시제도를 구축했고,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이 모든 활동은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비밀리에 행해졌고, (시민의) 감시를 받지 않는 가운데 자행됐다”고 보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퓰리처상 3회 수상한 베테랑 기자
수상자 젤먼은 “이 작업은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갈수도 있는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포스트의 폭로 보도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전율을 느끼며, 우리가 일을 망치지 않아서 안심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정부가 내리는 비밀스런 정책결정을 지켜주고, 정부가 우리를 상대로 전개하는 감시를 막아주려 한 것은 아니다. 국민은 이런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며, 이런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위대한 언론기관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젤먼이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젤먼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에 대한 보도로 2002년 수상한 취재팀의 한 명이었고, 2008년에는 딕 체니 부통령에 관한 보도로 취재팀원 다른 한 명 과 함께 공동 수상했다.
젤먼과 그린월드는 2013년 초 동료 로라 포이트라스를 통해 스노든을 소개받은 다음 그에게서 문서를 인수했다. 포이트라스는 자신의 이름이 포스트 및 가디언에 바이라인으로 명기됐기 때문에 두 신문으로부터 수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런 전례는 없었다. 심사과정에서 퓰리처상은 통상 미국 신문과 통신 등 언론사들에게만 수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디언의 경우 수상 자격이 있는지 이의가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가디언의 기사가 미국의 웹사이트에서 보도됐기 때문에 퓰리처상위원회는 수상자격이 있다고 결정했다.
퓰리처상 시상식 소식을 들은 스노든은 성명문을 통해 “퓰리처상위원회의 결정은 국민이 정부의 하는 일에 대해 일정한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이런 신문들의 헌신, 정열, 기술 등이 없었더라면 나의 폭로 노력이 의미없이 끝났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특별한 공헌을 한 기자들에게 나의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고 말했다. 스노든의 감사 성명은 언론보도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자신의 의도적 유출이 있었더라도 미국 사회가 정보기관의 광범위한 감시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말해준다. 그의 발언은 새삼스럽게 언론보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언론보도가 민주사회의 기초가 되는 공적 논의를 위한 계기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설원태 아시아N & 매거진N 편집국장/ 저널리즘학 연구소 연구위원 (신문과 방송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