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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중산층 빅뱅’ 눈앞… 세계경제 균형자 될까

한겨레

 

신흥국 ‘중산층 빅뱅’ 눈앞… 세계경제 균형자 될까

 

산업혁명이 미국 중산층 키웠듯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중심
2030년 32억명으로 급증 전망
소비 늘리며 투자와 성장 견인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 열쇠 쥐어


설 명절이 다가오니 경제도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난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올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세계의 재편’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래 5년을 고생했으니 이제 털고 일어나 성장과 풍요의 새 질서를 찾아가자는 말로 들린다. 마침 미국 중앙은행도 돈을 무제한 푸는 양적완화를 거둬들이고 있어, 경제라는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지긴 한 모양이다.

 

세계 경제가 다시 빈사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열쇠는 불균형 해소에 달려 있다. 특히 미국은 빚내서 마구 쓰고 중국 등 신흥국은 천문학적 무역흑자를 쌓아가는 글로벌 불균형은 위기를 부른 구조였다. 며칠 전 국제금융의 권위자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칼럼에서 “글로벌 불균형은 끝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행복하게 선언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셰일가스와 오일 발굴 덕에 미국의 에너지수입액이 줄어든 것 외에 국제수지 불균형 구조가 본질적으로 바뀌었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불균형을 제대로 극복하는 길은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 소비가 살아나 대내외 경제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비 엔진’으로 주목받는 신흥국의 중산층에 거는 기대는 크다. 세계 경제의 새 질서는 신흥국 중산층의 약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세계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세번째 중산층 ‘빅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산업혁명이 19세기 서유럽과 미국에 중산층을 만들어 낸 것이 처음이었다. 최초로 대량생산된 자동차인 포드의 T 모델이 미국 중산층 성장의 상징이었다. 2차 대전 뒤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에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이 이어지며 다시금 서유럽과 북미에서 중산층이 대거 성장했다. 이번에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에서 중산층이 급증하는 시대가 왔다.

 

사실 “얼마를 벌어야 중산층이냐?”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인도의 중산층은 3000만명이 되기도 하고 3억명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국제연합(UN)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이 쓰이는데 하루 10~100달러를 벌거나 쓰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본다. 구매력 기준 1인당 연간소득이 3650달러부터 3만6500달러까지인 셈이다. 범위가 여전히 넓지만 이 정도가 되어야 자동차, 텔레비전, 세탁기 같은 중산층을 상징하는 내구재를 구입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기준에 해당하는 이른바 ‘글로벌 중산층’은 18억명 정도로 추정된다. 여전히 인구의 70%는 하루 10달러도 못 번다는 얘기지만 성장세는 빠르다. 2020년에는 32억명으로 늘어나고, 2030년에는 49억명으로 늘어나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중산층에 편입된다는 계산이다.

 

특히 증가하는 중산층의 대부분은 중국, 인도 등 아시아에서 나오게 된다. 오이시디는 2030년에 아시아의 중산층이 약 30억명으로 늘어 전세계 중산층의 66%를 차지하고, 중산층 소비의 59%를 담당하리라 예상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하루 10~100달러를 버는 중산층이 현재 1억50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시진핑 새 정부의 균형성장 정책이 탄력을 받으며 10년 안에 이 인구가 5억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인도 역시 현재 5000만명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2020년에는 2억명, 2030년에는 4억7500만명으로 중산층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이 밖에 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등 동남아 4개국만 해도 2억3000여만명의 중산층이 있다. 중산층의 증가가 희망적인 것은 어느 시점에서 소비가 비약적으로 늘며 소비-투자-성장의 선순환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도의 경제학자 수르지트 발라는 한 나라의 중산층이 10% 늘어날 때 성장률은 0.5%포인트씩 오른다고 밝혔다.

대략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이 6000달러 수준에 이를 때 내구재와 사치재 소비욕구가 왕성해지고 내수팽창에 의한 성장에 탄력이 붙는다. ‘마이카’ 욕구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이미 불이 붙었다. 지엠(GM)은 2004년 만 해도 미국에서 10대의 차를 팔 때 중국에서 1대를 팔았으나 2009년쯤에는 두 곳의 판매 실적이 비슷해졌다.

 

먹고살 만하면 자녀 교육의 욕구가 커진다. 그래서 대학교육이 이 지역 최대의 산업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건강에 대한 욕구도 커져 병원, 제약, 건강식품 등 보건의료가 거대한 산업군을 형성하게 된다.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문화, 관광 산업의 성장도 기대된다. 아시아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11년 4107억달러에서 2015년에는 5407억달러로 연평균 6.5% 성장했다. 영화, 음악, 게임 등 문화 ‘한류’에 거는 기대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중산층 성장이 밝은 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소비를 자원과 환경이 감당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중국인들이 참치맛을 알면서 국제 참치가격이 사상 최고까지 뛰는 식의 일들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중국인 한명의 전기소비는 현재 미국인의 4분의 1이고, 인도인은 2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들이 미국인 만큼 전기를 쓰는 날 국제자원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또다른 그늘은 전세계적으로 중산층은 늘지만 한 나라에서의 빈부격차는 심화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청년실업의 고착화 등으로 중산층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 지구는 평평하게 할지 모르지만 한 나라의 골은 깊게 하는 세계화의 역설이다. 부자들의 사교클럽인 다보스포럼이 세계의 재편을 내세우면서 소득불평등 해소가 제일 과제라며 짐짓 걱정스런 얼굴을 지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4. 1. 27.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