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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내부 모순에 빠진 한국사회

내부 모순에 빠진 한국사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배려와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다. 최소한 2000년대 이전까지는 그랬다. 학교 표어로 자주 등장 했던 ‘공산당 때려잡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글귀는 우리 사회가 타인을 얼마나 배척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분단이라는 특수성으로 극단의 반공주의가 횡행했고 집단과 가치관을 달리하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타인에 대한 배려, 이념을 달리하는 타인과의 공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가 아닐 수 있다.​​

 


▲ 60년대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반공궐기대회​/ news1

 ■ 아직도 유효한 ‘반공이데올로기’

이승만·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진 반공이데올로기는 2014년 한국사회에 아직도 유효하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는 자식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기 위해 무려 46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민간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도록 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그의 몸부림 앞에 한국사회는 난도질을 했다. 국가정보기관은 취미생활과 고향, 노조라는 신분 등 그의 ‘뼛속 까지’ 사찰했다. 보수언론은 양육비도 주지 않는 매정한 사람이라며 ‘아빠의 자격’을 논했고, 이에 덩달아 각종 관변단체들은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이어나갔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 우리는 공감 하지 않았다. 대신 개인의 인격을 살인했다.

 

70년대 군사정권 시절 동네 술집에서 막걸리 한 잔을 먹다 나도 모르게 나랏일에 불평하면 여지없이 감방 신세를 졌다. 공산주의에 물들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되지 않을까 정부는 조금이라도 ‘불순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먹걸리 보안법’이 사회의 모든 통제 수단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회는 여전히 표현과 사상이 억압된 그 시절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 <김영오 주치의는 전 통합진보당 대의원>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8월 29일자 기사/ 조선일보 


 ■ ‘자기검열’에 빠진 사람들

국가의 암묵적인 사회통제는 국민 개개인을 두려움에 빠뜨린다. 국민은 그것이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도 자신에게 어떤 손해가 되지 않을까 계산부터 하게 된다. 이른바 ‘자기검열’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것이다.

 

서울동부병원에 계약직으로 재직 중인 이보라 과장은 김영오 씨의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조선일보>의 보도로 인해 심적 부담이 커졌다. 지난 8월 29일 <김영오 주치의(서울동부병원 이보라 과장)는 전 통합진보당 대의원>이라는 기사가 화근이었다. <조선일보>는 김 씨의 주치의인 이보라 과장의 정당 활동 등을 근거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의료봉사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서울시에 이보라 과장의 병원 근무 직함, 계약 신분, 김영오 씨의 의료진료 활동이 공무원법 위반인지 등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보수언론과 집권 여당은 그가 특정 정당 대의원이었다는 이유로 순수한 봉사활동 마저 이념적 잣대로 해석한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환자의 정치이념을 확인해야 하는 시대가 왔는지 불안하기만하다.

 

이 과장에 대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집단정서와 다른 행동을 하면 사회적 배제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리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 누군가 나의 신상정보를 알아내 약점을 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사회 내부에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의 통제와 국민의 자기검열이 증가 할수록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민주사회의 핵심가치가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성적이며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회지표가 사라짐에 따라 내부 모순이 커지게 되고 결국 무엇이 객관적인지 구분을 할 수 없게 된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는 특별법을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합리적 공론장을 형성하지 못했다. 오로지 이념적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버렸다. 이 또한 분단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반공이데올로기와 자기검열 속에 갇힌 우리들이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요연한 허상에 불과하다.

 

최종환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저널리즘학 연구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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