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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은행, 응답하라 1997

 

서울신문

 

은행, 응답하라 1997

은행가에 인사철이 되면 기자도 덩달아 바빠졌다. “밥 한번 먹자”는 임원들이 줄을 섰다. 대개는 ‘귀동냥’하자는 것이었지만 “누구는 이래서 안 된다”고 험담을 하거나 투서를 건네주기도 했다.


은행 인사를 정치인과 관료가 좌우하다 보니 ‘누가 누구를 미는지’와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가 은행 간부들의 큰 관심이었다. 은행장은 돈 빌리러 온 기업인과 서민에게는 하늘같이 높았지만, 재무부 사무관이 전화해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을 만큼 약체였다. 이러다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터졌다.


1997년의 위기는 정치인과 관료가 금융을 지렛대 삼아 기업을 통제하던 개발시대의 경제·사회 시스템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었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최근 회고록에서 “정부가 조금만 도와줬으면 회생해서 잘나갔을 것”이란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그의 판단력이 ‘세상의 문법’이 크게 바뀌는 때라는 데 미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관치금융’을 대체한 것은 시장의 규율이었다. 증권가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태씨를 국내 최대인 국민-주택 통합 은행장에 앉힌 것도 주주, 신용평가사, 조달금리 같은 시장 시스템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정·관계의 입김이 먹히지 않는 ‘메기’를 풀어놓겠다며 제일, 한미은행을 외국에 팔기도 했다. 물론 ‘선진 금융기법’과 거리가 먼 사모펀드에 매각하거나, 헐값에 매각해 시비가 일었지만 금융을 시장규율에 맡기자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위기의 기억이 희미해지며 예전의 관성이 고개를 들었다. 정치와 관치는 공공성이란 ‘손팻말’을 들고 돌아왔다. 엘지카드의 손실을 금융권이 공동부담하자는 당국의 계획에 “무원칙한 지원은 할 수 없다”고 반기를 든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감사에 걸려 2004년 연임이 무산된다. 그해 말 재정경제부 장관에 취임한 이헌재씨는 “시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내키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라고 경고한다. 시장규율은 피기도 전에 서리를 맞는 듯했다. 은행들이 부자들만 챙기고 서민들 수수료를 올려 억대 연봉을 누린다는 대중적 정서도 시장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시장에 기반해서 효과적인 거버넌스(협치) 구조를 만드는 일, 그러면서도 공공성을 높여가는 것, 당국이 감독을 책임있게 하는 일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성과 공공성의 조화는 구호로만 남고 은행장이나 지주사 회장 자리를 전리품처럼 챙기는 일에 정·관계가 점점 골몰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4대 천황’이라 불리던 인물들의 금융권 분할통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통령과의 학연·지연 등을 뒷배 삼아 임기 동안 금융을 주물렀다.
지난 6월부터 케이비(KB)국민은행에서 들려오는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의 다툼은 이런 흐름이 한층 노골화된 사례다. 겉으론 전산시스템 교체가 쟁점이지만 사실은 둘 다 ‘낙하산’인 회장과 행장의 주도권 다툼이란 걸 모르지 않는다. 임영록 회장은 금융 관료, 이건호 행장은 금융연구원 출신 학자로 은행업에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배경이 든든하다는 얘기가 돈다. 최근 화해하자며 갔던 템플스테이에서 방 배정 문제로 행장이 되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한다.


금융은 위험과 성과를 계량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으로 국방,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의 인프라이다.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금융은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변화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그 결과가 시장과 관치의 언저리를 왕복달리기 한 끝에, 투서를 탁자 밑으로 밀어주던 아이엠에프 사태 직전의 금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허탈할 따름이다.


이봉현 한겨레 신문 경제·국제 에디터/ 저널리즘학 연구소 연구위원 (2014. 9. 1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