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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언론전문화

경제저널리즘에 대한 회고

경제가 우리 삶에 중요하다면 이런 경제현상을 보도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이다. 경제현상은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의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론학자들은 한국 경제저널리즘에 대해 줄곧 전문성 부족을 문제로 지적했다. 여기서 전문성이란 복잡한 현상의 이면을 꿰뚫고, 올바른 가치와 방향에 입각해서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한국의 경제기자들이 틀에 박힌 인식과 관행에 기대 그날그날 지면이나 화면을 채운다는 말이다.

 

복기를 위해 먼저 꺼내볼 것은 1990년대 초부터 우리 사회의 과제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다. 1987년 시민항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하자 우리 사회에는 분배의 형평성과 같은 경제적 정의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마침 등장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같은 시민단체는 관료와 재벌이 한 몸이 된 개발연대의 경제 운용방식을 비판하며 개방과 자율 같은 시장원리의 확산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한다. 언론은 이에 동조해 시장=2의 민주화란 등식을 확산시킨다. 그 방법은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관치경제를 집중 비판하는 것이었다. 언론의 갈채 속에 속속 도입된 규제 완화나 민영화, 시장개방 같은 자유주의적 조처들이 정부의 경제 장악력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경제에 낀 권위주의의 낡은 때를 벗겨내는 것과 시장의 질서를 제대로 잡도록 정부를 합리화하는 일은 구별했어야 했다. 1987년 개정된 헌법도 1192항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두어 정부가 나서 대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을 제한하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당시 언론은 정부의 개입을 악()으로 몰아 국가의 힘을 빼는 데 몰입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식으로 풀이 죽은(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관료기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온 사회의 지배력을 넓혀간 것은 개혁의 칼날에서 비켜나 몸집을 부풀린 경제권력이었다.

 

1992년 말부터 김영삼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건 국제화세계화담론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 있다. 이 때 영향력 있는 일부 언론은 이들 담론의 이면에 감춰진 당국의 의도를 파헤치기는커녕, 홍보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 세계화를 국가적인 의제로 만들어 줬다. 훗날 정치학의 연구들을 보면 김영삼 정부가 국제화-세계화 드라이브를 건 것은 민주화와 노동자대투쟁으로 수세에 몰리던 보수세력이 열세를 만회하고 노동 및 사회적 기율을 다잡기 위한 신자유주의 담론기획의 성격이 짙었다고 밝힌다. 세계화로 모든 나라는 무한경쟁에 노출됐으며, 여기서 낙오되면 나락에 빠지는 만큼, 각 계층이 요구를 억제하고 다시 뛰자는 게 세계화 담론의 뼈대였다. 세계화가 국가적 의제가 된 뒤 대기업을 파트너로 한 성장 정책이 가속화했으며, 금융개방 같은 정책들이 서둘러 추진된 결과, 외환위기를 불러들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셋째는 재벌 문제에 대한 협소한 인식과 굴종적인 자세로 가장 힘센 집단인 그들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이다. 1997년에 경영난을 겪게 된 기아자동차 문제만 해도 그렇다. 기아 사태를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는 기업과 업종 전문화된 기업, 또는 대외의존적 자본과 민족자본의 대립이란 식으로 틀짓기를 하다 보니, 다른 재벌이나 마찬가지로 총수노름을 해 온 기아차 경영진이나 여기에 결탁한 부패한 노조 등 기아사태의 다른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지적하지 못했다. 겨우 자동차 산업에서 새로운 패권을 노리는 삼성의 음모기아 살리기 운동같은 곁가지를 보도하느라 몇 달을 허비하고 정부의 정책대응을 지연시켜 외환위기를 앞당긴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필자도 당시 자동차 산업을 담당하며 이런 류의 기사를 많이 썼기에 느끼는 회한이 적지 않다.

 

그 나마 외환위기 전까지 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재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경제기자가 종종 있었으나, 2000년 대 들어 신문-방송의 경영사정이 어려워 져 대기업의 광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재벌 대기업의 전횡과 부패를 지적하는 기자는 희귀종이 되어 갔다.

 

넷째는 2008년 대재앙으로 마감한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것이었다. 2001년 이후 사상 최저수준의 저금리 정책이 지속되며 과도한 낙관이 시장에 팽배하고, 월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와 같은 탐욕과 방종으로 흐를 때 한국언론은 시장붕괴의 경고음을 내지 못했다. 대신 2000년 대 초반부터 불어 온 부자 되세요열풍을 타고 국내 펀드 규모가 쑥쑥 커지자, 아시아를 무대로 작은 맹주 노릇을 하고 싶어진 금융권의 장단에 맞춰 중국 모멘텀을 찬미하고 해외펀드 투자를 부추겼다. 이런 부추김에 들떠 펀드에 투자한 국민들은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수 십 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돌아본 몇몇 사례는 당시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인식상, 실행상의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는 것은 비슷한 상황은 항상 되풀이 되며 그럴 때 현명히 판단하자는 뜻에서다. 이런 것들에 무지했거나 알고도 눈을 감은 결과 국민들이 그 뒤에 겪어야 할 고통은 너무 컸다. 경제저널리즘이 반발쯤 앞서 현실을 인도하는데 필요한 것은 언론인의 전문적인 식견과 폭넓은 관심, 그리고 대안적인 시각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자세일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