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김성재·김상철 두 사람의 공동 저서다. 이 책은 부제에서 보듯 ‘조폭언론과 맞선 노무현 5년의 투쟁기록’이다. 조중동으로 지칭되는 언론권력이 어떻게 나쁜 언론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불행히도 그런 행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언론의 오보만 해도 그렇다. 오보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다. 마감시간과 사실확인에 쫓기는 기자들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오보 아닌 오보’ 혹은 의도적 왜곡보도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학교폭력’ 참 이해가 안가요. 그건 전적으로 선생님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내용은 지난 5월16일 조선일보 사회면(A10) 5단 기사로 ‘스승의 날, 학생들 앞에 선 박원순시장 학교폭력은 선생님 잘못’이라는 제목 하에 쓴 기사 첫머리다. 박 서울시장이 지난 5월15일 스승의 날 서울 동작구 대방동 강남중학교를 방문, 학생질문에 대답한 내용이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이 기사내용은 ‘성인들의 잘못’을 ‘선생님의 잘못’으로 잘못 쓴 것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오보다. 서울시장이 스승의 날에 학교를 방문 ‘학교폭력이 선생님 잘못’이라고 얘기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더구나 신문사의 기사생산 과정을 생각할 때 몇차례의 검증과정을 거치는 것이 상례인 점, 확인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당시 현장에서 조선일보 기자가 취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장취재를 하고도 이런 오보가 나올 수 있을까. 조선일보는 하루 뒤 몇줄짜리 정정기사를 냈지만 영 뒷맛이 쓴 ‘사건’이었다.
이와는 또 다른 의도적 기사도 있다. 7월2일 동아일보는 단독보도로 검찰을 인용, 1면 5단기사와 6면 머리로 쓴 기사를 통해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부산저축은행 로비에 개입한 듯한 정황을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6면 해설기사에는 문고문과 저축은행의 관계도표까지 그려 넣었다. 익명의 검찰소식통을 인용한 전형적인 튀기기 기사라고 할 만하다.
이 신문은 문 고문이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금융감독원의 부산저축은행 검사를 완화해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금감원 국장에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또 검찰이 “지난달 극비리에 문 고문을 소환조사했으며 전화에 청탁성은 있으나 대가성은 없어 문 고문을 무혐의 처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문 고문은 이에 대해 “검찰로부터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해 어떤 혐의를 받거나 수사·내사받은 사실이 없다”며 “동아일보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안타깝다. 참으로 대단한 왜곡능력”이라고 비난했다. 문 고문이 청탁전화를 한 혐의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것처럼 보도됐지만 실은 문 고문 측이 낸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 고소인 측 참고인 조사를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문 고문측은 동아일보에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조사내용 흘리기를 비난하며 ‘문재인 죽이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검찰의 수사와 관련된 언론의 받아쓰기 기사들은 과거는 물론 앞으로도 논란이 될 공산이 크다. 특히 대선정국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상은 주로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 주자들과 주요 인사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삿일이 아니다. 예전처럼 검찰이 혐의내용을 흘리고 언론이 이를 중계하는 방법 뿐 아니라 그 밖의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보도 역시 비슷한 의혹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저축은행 등 수없이 많은 불법비리사건에 연루됐다는 설이 파다했으나 제대로 수사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 사건과 관련, 검찰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라고 발표한 부분이다. 조선일보의 단독보도에서 이들이 각각 1억원가량의 돈을 받았다는 피의자 진술내용도 흘러 나왔다.
이미 지는 권력인 이상득의원에 대한 수사 못지않게 박 대표에 대한 혐의내용이 눈길을 끈다. 사태진전에 따라 이는 민주당의 대선전략에 악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이해찬·박지원 연대와 함께 문재인 상임고문도 타격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정치공학이라는 의구심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 대표는 금품수수를 부인하며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 “이상득은 간 곳 없고 박지원 정두언만 보인다”고 반발하고 있다.
검찰의 칼춤과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보수언론의 고수(鼓手)역이 올해 대선정국의 변수가 될 것인가. 이들의 광기어린 마녀사냥에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시 되돌아보는 까닭이다.
김광원칼럼(미디어오늘 20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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