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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워터게이트 40년, 그리고 한국판 사찰

꼭 40년 전 1972년 6월 17일. 이날 밤 5명의 괴한들이 미국 수도 워싱턴 시내 포토맥 강변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잠입했다. 이들은 호텔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안에서 외과 수술용 장갑을 낀 채 체포됐다. 이들은 2300달러의 현금과 최신형 도청장치를 갖고 있었다.

 

괴한들은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비밀요원들이었다. 이들은 상대 정당본부에 새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왔던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건발생 40주년을 맞아 폭로의 주역신문이었던 워싱턴 포스트(WP)가 대특집을 냈다. 이 신문을 일약 세계의 최고 신문으로 만들어준 계기이기도 하다.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판은 역사의 현장 워터게이트 호텔(현재 워터게이트 오피스빌딩)에 모인 당시의 주역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40년의 세월은 이들을 모두 변모케 했다. 이 사건의 영웅 ‘20대의 사건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60대 후반의 노신사로 변했다. 이들은 특종기사들을 보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수퍼영웅 벤 브래들리(91) 전 편집인과 포옹으로 재회의 감동을 만끽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기자정신이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공동기고문에서 닉슨대통령이 생각보다 훨씬 사악했다고 회고한다. 이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각되기 훨씬 전부터 닉슨정부가 각종 뒷조사와 도청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닉슨이 1969년부터 5년동안 5개의 전쟁을 벌였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반전(反戰)운동과의 전쟁, 언론과의 전쟁, 민주당과의 전쟁, 사법체계와의 전쟁, 그리고 역사 그 자체와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 교차점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에 지적된 닉슨의 미국에 끼친 해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자유선거 등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인 헌법과 법치주의를 공격했다. 공화당의 장기집권을 위해 갈등구조를 조장하는가 하면 국가안보를 무기로 앞세웠다. 그는 무엇보다 ‘증오의 정치’를 통해 재집권을 노렸으며 미국인의 영혼을 훼손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수사와 취재가 진행중일 때도 이를 ‘부하직원들의 소행’으로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그는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며 자신의 결백을 강변했다. 그러나 결국 닉슨은 선거방해와 정치헌금 비리, 수뢰, 탈세 등 각종 부정부패로 하원의 탄핵을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끈질긴 탐사보도는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고 닉슨은 드디어 1974년 8월 사임했다.

 

그 경각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건 당시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닉슨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은 이 모임에 참석, 워터게이트 사건의 재발을 경고했다. 그는 ‘돈과 권력, 그리고 비밀’이 횡행하는 현재의 정치를 비판하며 “워터게이트 사건과 같은 일들이 오늘날에도 재연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고는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판 워터게이트’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2년을 넘겼다. 2010~2012년 한국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1972~1974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의 확대판이라고 할 만하다. 그 질과 양에 있어 모두 그렇다. 다만 한국판은 미국의 원판이 상상치도 못할 정반대의 결말을 맺고 있다. 특히 지난주 검찰이 발표한 재수사 결과는 검찰의 존재이유마저 의심케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발표내용은 한마디로 이명박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대한 면죄부다.

 

재수사 역시 꼬리 자르기에 머문 것이다. 검찰은 스스로 몸통이라고 나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몸통이라고 맞장구 쳤으니 소도 웃을 노릇이다. 이번 수사의 초점은 이명박대통령이 사찰결과를 보고받았는지,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난번 검찰수사(2010년)및 증거인멸에 개입했는지의 여부였다. 그러나 3개월에 걸친 이번 수사결과는 대통령은커녕 당시 권재진 민정수석(현 법무장관)의 이름 석자도 거명하지 않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청와대와 검찰의 짜고 치는 물 타기 수법이다. 이번 재수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지난 정권의 유사사례를 끼워 넣은 것이다. 그것도 참여정부의 합법적 공직감찰 자료 등을 싸잡아 배포, 수사의 초점을 흐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와대의 행태는 한술 더 뜬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전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참여정부 때도 이런 일이 있었음을 보도해달라고 했다니 그 후안무치함에 할 말을 잊는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특집에서 특히 탐사보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탐사보도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꽃을 피웠으며 ‘탐사보도의 세계화’에 기여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또 이 신문은 혼란스런 인터넷 시대일수록 민주주의 버팀목인 탐사보도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광우병 보도로 탐사보도의 진면목을 보인 PD수첩진에 가혹한 징계를 내린 문화방송과 극적 대조를 이룬다. 이제 이 땅의 어느 언론이 탐사보도의 씨마저 말리려는 이 정권의 ‘한국판 워터게이트’를 파헤칠 것인가.

 

김광원칼럼 (미디어오늘 201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