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전망 l 그림자금융
사모펀드 등 감독 사각지대 자산2007~2010년 연평균 11.8% 늘어감소세 보이는 미·일 등과 대조적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이었으나 잠시 잊혀진 듯했던 ‘그림자금융’(섀도뱅킹)이 다시 관심권 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중국의 금융위기와 관련해서 얘기가 나왔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지난주 중국의 장기위안화채권 신용등급을 내리면서, 그림자금융이 급속히 증가해 그 부실이 중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며칠 전, 헤지펀드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도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중국 그림자금융이 팽창하는 것을 보면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연상된다”고 경고했다.
그림자금융은 은행과 유사한 자금중개 기능을 하면서도 당국의 감독은 적게 받는 금융기관 및 금융상품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림자’라는 어두운 이름이 붙은 것도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뜻이다. 사모펀드, 헤지펀드, 투자은행 같은 곳이 주도하는데, 환매조건부채권매매, 신용부도스와프, 자산유동화처럼 은행 장부에 기재되지 않는 복잡한 파생상품이 대표적인 그림자금융이다.
2008년 이전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구조화 투자회사(SIV: Structured Investment Vehicle)란 형식적 자회사를 만든 뒤 저금리 단기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 돈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이에 연계된 각종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해 왔다. 2007년 초에 구조화 투자회사가 조달한 자금 규모만 5조달러로, 일반 은행 조달 규모의 절반에 육박했다.
그런데 구조화 투자회사는 모회사와는 별도 회사여서 이들의 운용내역은 투자은행의 재무제표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 회사가 무너져 얽히고설킨 거래가 모두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 규모가 얼마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레버리지 비율(타인자본 의존도)도 높아서 파산 당시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레버리지 비율은 40배가 넘었다. 이는 2~3%만 손실이 나도 투자 원금을 까먹는 매우 위험한 구조였다.
중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부른 그림자금융은 미국처럼 복잡한 파생상품보다는 은행 공식 대출을 우회해 이뤄지는 편법 대출과 관련돼 있다. 당국의 대출규제가 심해지자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고금리 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또 신탁회사나 펀드가 여유있는 계층의 돈을 끌어들여 부동산 개발처럼 위험이 큰 사업에 대준 돈도 엄청나게 많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는 올해 초 기준으로 약 20조위안(3500조원)으로 2008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이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40%에 이르는 규모다.
중국에서는 특히 은행의 부실자산이 그림자금융으로 흘러들어가 숨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부실을 그림자금융에 떠넘기는 것이어서, 위기가 닥치면 그 폭발력은 한층 커지게 돼 있다. 중국 당국도 그림자금융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은행의 부외거래 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등 실태 파악과 규제 방안 마련에 나섰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규제완화의 산물인 그림자금융은 이제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나 감독기구가 통제할 수 없는 규모로 커졌다. 주요 20개국(G20) 산하 재무장관 회의인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따르면, 전세계 그림자금융의 규모는 2002년 26조달러에서 지난해 말에는 67조달러까지 증가했다. 이는 전세계 금융자산의 약 25%에 이르는 것이다. 그림자금융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을 뿐 아니라 통화정책의 영향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렇다 보니 유동성 증대→이자율 하락→파생상품의 가치 증대→신용 증대라는 순환고리를 완성해 전통적 은행 시스템의 자금 조달 규모를 초월하게 됐다.한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2011년 말 기준 1268조원으로 국내 금융회사가 보유한 금융자산(4617조원)의 27.5%에 이른다. 물론 400조원에 이르는 펀드나 220조원에 이르는 은행·보험의 신탁계정 등이 모두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증가 속도는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한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는 연평균 11.8%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규제가 강화되면서 일본(-6.6%), 미국(-2.4%), 영국(-2.0%) 등에서는 그림자금융 규모가 줄어들거나 소폭 증가(유로존 +3.9%)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림자금융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있어 금융위기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2010년 서울회의에서 G20 정상들은 금융안정위원회에 권한을 부여해 그림자금융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강화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머니마켓펀드(MMF)의 펀드런 취약성 감축, 은행 시스템에 대한 파급효과 경감 등 5개 규제 이슈를 발표했다. 각국은 이런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서 올해부터 그림자금융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하지만 나라별로 이견도 많아 기간이 오래 걸리고, 규제의 실효성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그림자금융은 원래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하는 전통적인 은행이 신용위험을 분산해 좀더 안전해지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것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실물 경제보다 웃자란 ‘과잉 금융’이 고수익 상품을 찾으려는 욕구와 이를 중개해 높은 수수료와 보너스를 챙기려는 금융 종사자들의 탐욕이 결탁한 결과였다. 그늘진 금융이 또다른 위기를 만들기 전에 투명함의 빛을 쪼여야 한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 201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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