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세상의 모든 약자를 위한 선물

"역사적 기록 보면 한반도의 지배계층은 약자에게 가혹 현대에도 마찬가지 디지털혁명이 선물"


중국의 역대 왕조는 대체로 수명이 짧았다. 천하를 처음 통일했던 진나라는 불과 15년 만에 패망했다. 태평성대였다는 당과 청 역시 300년을 못 넘겼다. 중국과 달리 한반도의 왕조는 장수했다. 1천년 역사의 신라를 비롯해 고려와 조선 모두 500년 가까이 지속됐다. 얼핏 왕조의 부침이 잦다는 것은 전쟁이 많은 것으로 백성에게는 안 좋을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측면도 있다. 왕조가 자주 바뀐다는 것은 민심을 잃은 권력은 곧바로 대체된다는 것으로 백성의 지지가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반도 역대 정권의 수명이 길었다는 것은 따라서 민초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의 지배계층은 특히 약자에 가혹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제대로 된 역량과 도덕성을 갖지 못했다. 전쟁이 임박해서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막상 전쟁 앞에서는 제 목숨을 먼저 챙겼다. 임금은 도망을 가고 백성이 의병이 돼 대신 싸웠다. 청나라의 칼날에 백성이 도륙되는 가운데 왕과 대신들은 남한산성에서 객기를 부렸다. 지배계층을 비판하거나 개혁을 시도했던 이들은 참혹하게 짓밟혔다. 연산군을 축출한 뒤 득세한 공신세력을 비판했던 조광조와 동인, 서인의 차별을 없애고자 했던 정여립 등은 모두 모반죄로 죽임을 당했다.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 동학운동 등에 직면해서도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약자에 대한 대우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과 뒤이은 분단은 약자를 억압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던 많은 이들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단죄됐다. 군사정부를 비판했던 젊은 대학생들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농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출범했던 한국가톨릭농민회, 노동자도 사람이라고 외쳤던 전태일, 민주화를 요구하던 광주시민 등은 모두 빨갱이로 내몰렸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 역시 한계가 많았다. 청와대, 재벌, 군대, 검찰과 종교계는 여전히 성역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기득권의 입장에 더 충실했다.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 중의 하나인 한(恨)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국어사전을 보면 한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풀리지 못하고 응어리져 맺힌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너무도 강력하고 자신은 너무 나약하기 때문에 인내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의 심리적 치유 장치였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고단하게 살아왔던 모든 약자에게 최근 디지털 혁명이라는 깜짝 선물이 도착했다.


인터넷, 스마트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지금까지 접근이 금지되었던 모든 공간이 투명해졌고 모든 정보가 기록되고 공개된다. 과거와 달리 사회적 약자는 이제 더 이상 고립되어있는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다. 물리적인 위협으로도, 돈으로도, 법으로도 특정한 정보를 감추거나 확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들은 이제 손쉽게 연결되고, 집단적인 의사를 형성하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 국민을 도청했던 뉴스월드가 순식간에 폐간되고 5·18 정신을 훼손했던 ‘일베’라는 사이트는 10시간 만에 광고가 끊겼다. 익명의 해커들이 전 세계의 비밀정보를 찾아내 위키리크스와 같은 매체에 올리고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모여 위키피디아와 같은 집단지성을 실천한다. 지구온난화, 조류독감, 테러리즘 등 다수의 ‘공감과 동의’(Hearts & Minds)를 확보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급증했다. 그간 국내 지배층은 군림하고 명령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역량을 키우고 책임을 지는 데는 무관심했다. 자신들을 둘러싼 일련의 굴욕적인 사건을 여전히 음모론으로 본다. 그러나 이 선물이 가져올 변화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 2013.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