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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유로존 위기와 獨 연방헌재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헌재)가 유럽 통합에서 주시해야 할 기구로 부상했다. 바로 헌재가 유로존 위기 극복책의 위헌 여부를 수시로 판결해 통합이 진전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부터 이틀간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과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 외르크 아스무센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회 이사 등 유로존 위기 해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남서부 칼스루에 시에 있는 헌재에 왔다. 헌재는 ECB의 3년 만기 미만의 국채 무제한 매입(Outright Monetary Transactions·OMT)이 기본법(헌법)을 위반했는지를 판결하는 과정의 하나로 공개 청문회를 열었다. 이 청문회의 최대 관심사는 바이트만 총재와 아스무센 이사의 공개적인 설전이었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이전에 바이트만은 총리실 경제보좌관으로, 아스무센은 재무부 차관으로 근무했다. 바이트만은 OMT가 ECB의 물가안정 업무를 벗어난 사실상의 회원국 자금지원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반면에 아스무센은 유로존 주변국의 국채 금리가 너무 치솟아 정상적인 통화정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OMT 도입이 불가피했다고 옹호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해 9월 OMT 정책을 발표했다. 2011년 12월과 2012년 2월 2회에 걸쳐 1조유로의 3년 만기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유로존 금융기관에 제공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금리가 여전히 치솟자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유로존 회원국이 구조조정 조건을 수용하면 이들의 국채를 무제한 매입해 주겠다는 OMT를 발표했다. 아직까지 OMT 지원을 받은 국가는 없다. ECB가 유로존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겠다고 발표하자 그 발표만으로도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국의 구제금융 제공에 반대하는 독일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헌재에 5000억유로 규모로 유로존의 항구적인 구제금융인 유로안정화기구(ESM)와 OMT의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ECB는 유럽연합(EU)의 어떤 기관이나 회원국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따라서 헌재는 법리상 ECB의 정책이 기본법을 위반했는지 판결할 수 없다. 그러나 헌재가 ECB의 OMT가 중앙은행의 업무에서 벗어난 정책이라는 의견을 낸다면 독일 정부는 여론이 악화되기에 좌시할 수 없다.


이 소송을 두고 독일 내 논란은 뜨겁다. 1990년 통일 이후 15년간 허리띠를 졸라매 경쟁력을 회복한 독일인들은 자신들을 개미로,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나라의 시민들을 베짱이로 보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3분의 2 정도의 독일인들은 구제금융 제공을 반대해 왔다.


헌재는 유로존 위기 해결 과정에서 의회의 감독 권한 강화를 조건으로 아직까지 위헌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헌재는 연말에도 의회의 감독 권한을 추가로 강화하라는 조건을 내세우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유럽통합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와 다르게 회원국의 정책 권한을 이양받은 초국가 기구의 권한 강화가 특징이었다. 통합 과정에서 헌재의 역할은 통합의 주도권을 두고 초국가 기구 중심 대 국민국가 주도의 통합이 계속해서 긴장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파이낸셜뉴스 2013.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