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와 쟁점/칼럼/기고

흉측한 역사도 배워야하는 이유

누가 내 사생활을 샅샅이 감시하고 기록을 남겼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만약 내가 이 기록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실제 이런 일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티모시 가튼 애시(Timothy Garton Ash)교수는 유럽 역사와 정치, 특히 독일 현대사의 대가다. 그는 1989년 11월 9일 동서 베를린을 가로지르던 장벽이 무너지기 전 수차례 독일을 방문하여 동독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을 인터뷰하여 책을 썼다. 비단 서독 인사뿐만 아니라 동독 정책결정자도 만나 학자의 시각에서 동방정책이나 분단 독일의 쟁점을 실체적으로 규명하려 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되었고 동독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동독 독재정권의 기록은 그대로 남았다. 애시 교수는 구동독 비밀경찰(슈타지, Stasi)이 남긴 자신의 감시 기록을 열람했다. 서베를린에서 기차를 타거나 초소를 통해 동베를린에 넘어 갔을 때부터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고 호텔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동독 독재정권은 수 만 명의 슈타지 요원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들은 약 20만 명의 밀고자(‘비공식 협력자’)를 두었다. 동독에서 저명한 작가나 예술가들 가운데 몇몇은 통일 후 밀고자임이 드러나 은퇴하거나 수모를 겪었다. 비밀경찰은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준다거나 약점을 잡아 친구나 가족까지 감시하게 만들었다.


애시 교수가 감시기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통일 후 독일 정부가 동독 문서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하고 보관하여 시민들에게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통일 독일은 독재체제를 제대로 연구해야 분단의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통일 직후인 1990년 10월에 동독 비밀경찰 문서보관소(http://www.bstu.bund.de/DE/Home/home_node.html)를 개설했다. 베를린에 본부, 드레스덴과 에어푸르트 등 14개 도시에 지부가 있다.


지난해 말까지 679만 3200여건의 문서 열람 신청이 있었다. 비밀경찰이 자신을 감시했는지 알고 싶은 시민은 누구든지 이 보관소에 편지를 써서 문의하고, 감시를 했다면 그 문서를 볼 수 있다. 보관 문서 전체의 길이를 합하면 약 111㎞ 정도고 140만장의 사진 등이 이 보관소에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예술가 부부였지만 남편 몰래 슈타지 밀고자로 일하던 아내가 괴로워하다가 사고로 죽는 모습을 보여주어 독재정권의 인간성 파괴를 표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동독의 독재체제를 연구하는 별도의 재단(http://www.bundesstiftung-aufarbeitung.de/)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공산독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산독재에서 신음한 폴란드와 헝가리 등의 동부유럽 국가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특히 이 재단은 역사와 정치학 등 박사과정의 연구자들에게 동독 연구를 격려하며 장학금을 주고 있다.


동물원에서 흉측한 코끼리를 보았다. 외면하고 잊으려 한다고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대처하는 게 핵심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것만 있다면 인생은 너무 단조롭지 않을까? 슈타지 문서 보관소 홈페이지 첫 화면은 “우리가 독재를 더 잘 이해할수록 민주주의를 더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싣고 있다.


이제 광복절이 다가온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의 우경화 경향은 점점 극심해지고 있다. 역사라는 무기를 아주 잘못 사용하고 있는 일본의 극우 정부다. 우리는 진실만이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인식하고 진실을 규명하고 알려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경산신문 2013.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