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NYT도 종북세력이다
“뉴욕타임스도 종북세력?”
뉴욕타임스(NYT)의 지난 1월13일자 사설내용이 논란을 일으키자 나온 한 누리꾼의 반응이다. 물음표를 찍긴 했지만 왜 아니랴. 이 사설에 관한한 박근혜 정부나 조중동 등 일부 보수언론에게 NYT는 종북세력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NYT는 종북세력 보다 더 높은 수위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비교적 짧다. 불과 300단어 정도의 분량이지만 그 내용은 박근혜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일면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그 주요내용은 이미 많이 나왔지만 사설의 전반적인 맥락을 짚어보기 위해 사설 전부를 번역,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반영하기 위해 재집필 고교 역사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다. 아베총리는 일본 문부성에 애국주의를 옹호하는 교과서들만을 승인하도록 지시했다. 그가 주로 우려한 것은 제2차 대전에 관한 것이었고, 역사의 수치스런 핵심부분을 삭제하기 원했다. 그는 교과서에서 한국인 ‘군대 위안부’ 문제를 빼고자 했고, 난징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을 축소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전시의 침략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위험한 국가주의를 조장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대통령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해방 후 한국의 독재정권에 관한 교과서 기술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 문제를 축소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여름 교육부로 하여금 친일협력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기술한 새 교과서를 승인토록 했다. (현재 한국의 전문가 및 엘리트공무원 다수는 이들 친일파의 후손들이다.) 학계와 노조 그리고 교사들은 박대통령의 역사왜곡을 비판하고 있다. 아베총리와 박대통령은 전쟁과 친일에 관해 민감한 개인적 가정사를 갖고 있다. 아베의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 용의자였다. 박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는 일제 때 일본군 장교였고, 1962년부터 1979년까지 군사 독재자였다. 두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과서개정의 위험한 노력은 역사의 교훈을 좌절케 하는 위협이 되고 있다.”
이 사설은 아베총리와 박대통령에 대한 언급 분량마저 정확히 반반씩을 할애하고 있다. 두 사람을 대칭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비교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NYT로서도 한국과 일본의 최고 지도자를 한꺼번에 비판하는데 나름의 합리적 방법을 택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NYT는 이전부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해왔다. 따라서 이 사설의 방점은 역사적 과오의 성격이나 양적 질적 비교가 아니라, ‘역사적 교훈’을 거스르는 교과서 왜곡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물론 언론까지 나서 NYT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사과를 요청하는 등 짐짓 요란한 모습이다. 외교부는 박대통령이 교과서 채택에 압력을 가했다는 사설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뉴욕 타임스 쪽에 필요한 조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인 한국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한국사 교과서를 일 역사 왜곡과 같이 본 NYT는 사과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과연 교학사의 한국사교과서 채택과정과 그 결과가 어떤지 자문해본다면 결론은 나올 법하다. 무엇보다 박대통령의 태도다. 그는 이미 2008년 한나라당 의원시절 뉴라이트계열 학자들이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기념회에 참석,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고 치하했다. 2012년 대선국면에서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인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7월 잘못된 6.25북침설 여론조사를 근거로, 이를 ‘왜곡된 역사교육 탓’이라고 속내를 내보이는가 하면 신년기자회견 등에서도 유사한 얘기를 되풀이했다.
‘한국인 위안부가 일본군대를 따라다녔다’고 기술하는 등 친일·독재미화에 앞장선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지원은 전폭적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한 이배용을, 국사편찬위원장에는 뉴라이트계열의 유영익을 임명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5.16의 군사정변 여부와 관련, “우리 사회에서 편이 갈리는 상황”이라고 했고, 5.18 광주항쟁에 관해서는 “정치적으로 대립된 이슈”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온갖 편법을 동원하다 실패하자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NYT의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NYT가) 세계 지식인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한다. NYT는 1896년 불편부당한 보도 등을 위한 편집권 독립을 경영전략으로 내세워 언론역사에 전설적 유산을 남겼다. NYT는 또 1971년 6월 극비문서였던 펜타곤 문서내용을 폭로할 당시 리처드 닉슨 정부의 기밀누설 혐의 제소에 “언론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피지배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승소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NYT의 ‘종북사설’이 아니더라도 박근혜대통령은 가해측 아베총리 못지않게 절절한 역사반성을 하는 게 순서다.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 (2014. 1. 21.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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