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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장남론을 다시 생각한다

 

영남일보

 

장남론을 다시 생각한다

 

가문 일으키기 위해선
장남이 출세를 해야
하지만 게임 규칙 변해
대구, 다시 선택의 순간
장남에게 회초리 들까

 

방향감각이 부족한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은 구세주다. 원하는 장소만 입력하면 도착시간은 물론 어느 차로로 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여행의 필수 목록 중의 하나인 지도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한다. 목적지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가는 길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또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알려준다.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도 이와 비슷한 것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이론’이라 한다. 학설, 담론, 모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론은 ‘논리적으로 잘 짜인 이야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 특정 정당에 대한 대구와 광주의 몰표 현상 역시 이러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장남론’이다.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장남이 출세를 해야 한다.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은 장남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무조건적인 후원에 있다. 장남에 대한 비판은 누워서 침 뱉기다. 장남론은 대강 이런 생각의 덩어리다. 그간 여기에 뿌리를 둔 대구의 선택은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중앙 무대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는 이 지역 출신이다. 대구가 다른 도시에 무시당하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는 것 역시 출세한 장남이 뒤를 봐 준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좋았다고 앞으로도 계속 좋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외양은 화려하지만 속내는 편하지 않을 수 있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맞아 게임의 규칙은 변했다. 출세한 장남이 남몰래 취직도 시켜주고, 이권도 챙겨주고, 편의를 봐 주던 시절은 지났다. 설령 괜찮은 자리나 사업이 있어도 장남을 밀어주느라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동생들은 적임자가 아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동생이나 부모는 자칫 부담일 수 있다. 인생에 방해만 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도와주는 척 흉내만 내도 크게 나무랄 사람은 없다. 동생들이 제대로 밥벌이를 못하는 상황에서 장남에 대한 가족 전체의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부모는 동생들 앞에서 면목이 없고, 당연히 가정불화가 생긴다. 장남이 제공하는 알량한 떡고물이라도 챙겨야 할 처지인지라 장남에게 불만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오히려 장남의 불효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기에 분주하다. 해마다 불만이 쌓이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대구의 말 못할 속사정이다.

 

장남이 권력을 독점하는 현 상황에서 남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크게 세 가지다. 정치적 지원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장남의 개과천선을 유도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을 감안할 때 자신에게 아무런 견제력도 행사하지 않는 상대에게 선의를 베풀 이유는 없다. 안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명백하다. 또 다른 선택은 장남의 지위나 이해관계가 결정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장남의 잘못이 일부 공개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간의 불효에 대해 책임을 묻고 향후 유사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더 엄한 질책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방법이다. 동생들의 울분을 다독거리고 장남 또한 무조건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남은 재원을 이제라도 동생들에게 투자함으로써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마지막 선택이다. 장남이 주는 알량한 혜택이 줄어들어 금단증상은 발생할 수 있지만 동생들의 경쟁력은 확실히 높일 수 있다. 장남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던 ‘제 식구 감싸기’란 비난에서 벗어남으로써 이웃의 협력도 기대할 수 있다.

 

대구는 다시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대구를 지켜보는 외부의 눈도 어느 때보다 많다. 지역 간 경쟁이 아니라 지역 내 경쟁이라는 점에서 큰 손해를 볼 일도 없다. 2014년 봄, 과연 대구는 장남에게 회초리를 들 수 있을까?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4. 4. 2. 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