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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하야’ 요구를 생각한다

 

미디어오늘

‘박대통령 하야’ 요구를 생각한다

 

“·····밑의 사람들은 평소에 리더가 가진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급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리더가 원하던 성향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평소 리더가 어떨 때 칭찬했고 어떨 때 호통쳤으며, 어떨 때 심기가 불편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리더가 평소에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한다. ····· ”

 

청와대 누리집에 올라 누리꾼은 물론 일반인들의 큰 반향을 일으킨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라는 글 중에 나오는 얘기다. 일상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일 중의 하나다. 그 규모가 크든 작든, 그 대상이 국가든 회사든 상식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이다. 이 글의 필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가 인혁당 사태 때 보여준 반응, 자신의 부친 때문에 8명의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안타까움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용차 사태의 희생자들이 분향소를 차렸을 때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 한 중구청장은 그들을 싹 쫓아냈고,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죽어가도 아무도 그걸 긴급하게 여긴 적이 없고, 모두 살기보다 일부만 사는 게 효율에서 좋고, 자살자가 늘어도 복지는 포퓰리즘 뿐·····”이었다며 이런 현상이 “이 시스템의 암묵적 의제”라고 주장한다.

 

그 대신 세월호 침몰 때 “지시가 없어도 척척 움직인 건 구조활동을 멈추고 의전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재빨리 대통령이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을 세팅한 사람들, 대통령은 잘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라고 사설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 재빨리 불리한 소식들을 유언비어라 통제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고 이것이 평소 이들의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매우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글의 논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결코 이런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의 필자는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인용하는 까닭이 딱히 박 대통령에 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침몰을 막을 수 있는 복원장치로서의 언론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종합하더라도 세월호의 비극은 이미 예고된 인재였다. 무분별한 규제철폐와 이를 이용한 노후 여객선의 개조, 화물과적에 따른 평형수의 방출의혹, 선장과 선원들의 의무방기, 그리고 재난구조 시스템의 난맥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월호의 침몰은 그 유례조차 찾기 힘든 ‘한국형 참사’라고 할 만하다. 이와 같은 비극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은 없는 것일까. 이번 사태에서 언론의 보도태도와 내용이 피해자 가족은 물론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를 위한 언론의 역할에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언론이야말로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는 지적이 언론 내부에서조차 일었고, 심지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이 배경에는 재난보도에 관한 기본적 원칙문제 등이 내재해 있다. 언론의 확인노력도 없는 정부 발표의 받아쓰기와 속보경쟁, 그리고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한 인터넷 언론의 무분별한 낚시성 기사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치열한 개선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언론의 역할은 공공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제의 이행이다. 일부 보수언론이 인명구조라는 공론장의 긴급한 의제를 선박회사와 관계공무원에 대한 책임 묻기로 몰아감으로써 오히려 구조작업을 위축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이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를 ‘살인행위’로 비난하는가 하면 관련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단계별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발언에 몸을 움츠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런 때 필요한 복원장치가 바로 언론의 환경감시 등 공론장 역할이다. 대통령의 권력과 권한에 대한 감시기능은 언론의 기본적 의무이다. 일부 방송과 자칭 주요 보수언론이 ‘박근혜 구하기’의 의혹을 받는 것은 세월호 침몰과 같은 재난상황에서는 국민과 국가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이후 계속돼온 방송장악 시도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보수 언론과의 유착관계는 이미 상식의 한계를 넘고 있다. 세월호 사태와 관련한 미디어오늘의 폭로는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한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며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전방위로 나서 세월호 관련보도를 ‘조정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문건과 활동현황이 적시되고 있다. 방송사의 인허가권을 가진 방통위는 이를 위해 재난상황반을 편성,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전히 실종자 수색이 진행 중인 참극을 앞에 두고서도 이런 정도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언론이야말로 이번 사태를 통해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이 ‘공론장의 복원’임을 확인한 셈이다. 언론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기본원칙을 지켜나갈 수 없다면 그것은 국민과 국가에 대한 흉기나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이어 이번 참사에서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 (2014. 05. 01.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