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월드컵을 100% 즐기는 방법
월드컵 제대로 즐기려면
‘축구를 통한 더 나은
미래의 건설’이라는
피파의 정신, 모두가
배우는 자세 필요해
학창시절 정말 축구를 좋아했다. 남들은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던 고3 시절에도 축구를 빼먹지 않았다. 당시에는 드물었던 남녀공학이 여학생이 응원해 준다는 것 자체로 마냥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려고 열심히 뛰었고 무더위도, 소나기도 피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학력고사 성적에 실망하신 부친께 담임선생님이 하신 첫 말씀이 “야가 축구만 좀 덜 했으면 더 좋았을 낀데”였을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보면서 문득,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무엇을 즐긴다는 것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즐기는 첫째 조건은 자신에게 이롭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축구를 통해 고3 시절의 스트레스를 풀었고 체력도 길렀다. 교실이 아닌 운동장에서 놀았으니 당연히 공부하는 애들은 방해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쟁, 게임 규칙의 존중, 상대에 대한 배려와 결과에 대한 승복 등 스포츠 정신을 배우는 것은 또 다른 조건이다. 억지를 부리기에 앞서 합의된 규칙이 무엇인가를 먼저 익히고, 정말 게임이 부당하다면 절차를 지켜 바꿔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친구의 속내를 듣고 오해를 푸는 소통의 기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우정을 쌓게 된 것도 즐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같이 뒹굴면서 땀 흘리는 동안 동질감을 키웠고, 귀한 인맥으로 남았다. 월드컵을 100% 즐기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월드컵은 전쟁이 아니라 축제다. 마음껏 고함치고 신나게 스트레스를 푸는 기회다. 경기를 보면서 욕을 하고 상대편을 모독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역시 느긋하게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월드컵은 또한 다른 나라, 문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다. 그간 잘 몰랐던 국가를 비롯해 최소한 같은 H조에 속한 러시아, 벨기에와 알제리 등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고 공유할 수 있다.
‘축구를 통한 더 나은 미래의 건설’이라는 피파(FIFA)의 정신은 물론 참가국, 관련 단체와 주요 인물에 대해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보다 행복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피파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브라질에서 월드컵 개최를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월드컵이 풀어야 할 숙제는 어떤 게 있는지 등에 대한 지식은 운동장 밖에 있다. 최고 선수가 누구인지, 누가 결승전에 진출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면 즐거움은 너무 가벼워진다. 인류에 대한 예의와 존중과 연대의식을 키우는 것 역시 즐거움을 더해준다. 만남과 교류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와 공감대는 종교, 이념, 체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아쉽게도 우리의 월드컵에는 이런 요소가 부족하다.
과거 월드컵 때처럼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국가는 이미 공공의 적이다. 만약 16강에 올라가면 적은 더 많아질 것이다. 행여 상대편을 칭찬하면 낭패를 당한다. 같이 모욕하고 비웃어야 국민으로 인정받는다. 우리가 잘하면 실력이지만 상대가 잘하면 행운이거나 편파 판정이다. 벌써 몇 십년째 월드컵을 해 왔지만 인류의 공통적인 숙제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별로 알지 못한다. 한국의 실력을 자랑할 생각만 했지 승패를 떠나 함께한다는 생각은 부족했다. 축구라는 경기에만 몰두했고, 그 너머에 있는 풍경과 역사와 사람은 놓쳤다.
즐거운 축제에서 모든 선수는 진심 어린 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다. 게임의 룰은 존중되어야 하고 우리만의 특혜를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미래의 더 나은 관계를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아픔을 공감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낯선 외국인이 한국을 정말 멋지고, 매력 있고, 예의 바르고, 사려 깊으며,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얻는 즐거움은 묵직하다. 과연 우리는 월드컵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널리즘학 연구소 연구위원 (2014. 6. 25.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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