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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현장/최신정보

우리는 진정(眞正), 변화를 원하는가?




우리는 진정(眞正), 변화를 원하는가?


‘대한민국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공존’

언론의 변화와 지식인의 역할

 

김성해 교수를 처음으로 만난 건 지난 4월 말, ‘한국과 터키에서의 민주주의와 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였다. 이 날 김성해 교수는 ‘한국의 언론민주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주제로 발표했고, 세미나가 끝날 무렵 기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더굿인피플’이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며 고민을 거듭하면서, 이는 곧 현재 언론과 우리 사회가 가진 고민이라고 생각하여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 6월,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김성해 교수를 만나 격이 없는 편한 대화를 나누었다.


Q. 언론의 주된 역할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언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들을 감시하고, 조율하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현재 일어나는 하나의 이슈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과 사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면서 중요한 어젠다는 계속해서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몇 몇의 편집장과 힘 있는 조직들이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전체를 모두 좌지우지 하니 이슈가 다 사라져 버립니다.


‘군림(君臨)과 무조건적인 감시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감시하고, 잘하는 것은 권장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언론의 감시(監視)에는 국가이익, 공공이익, 보편적 가치, 대안과 관련한 감시가 핵심입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부당함에 행사됨으로서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나아가 더 잘하도록 권장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을 바라볼 때 ‘개가 도둑을 보고 짓는’것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감시는 공직자, 혁신가 등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권력자체를 감시하고 대통령에 대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행위, 정치인의 행위 중에 공익과 국가이익에 미칠 수 있는 문제를 감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환경 감시입니다. 기자가 관청에 들어가 군림하는 것처럼 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못하는 것은 비판하되 잘하는 것은 칭찬할 수 있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언론사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하는데, 대안은 무엇인지?


‘혁신적인 언론이 기존 언론계에 충격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 접근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KBS, 조선일보의 지배 및 소유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는데, 기득권을 가진 언론사가 내부개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니 현실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여 언론계를 혁신하고 충격을 줄 수 있도록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여론 다양성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IT 기술의 발달로 국내 신문사들은 자체 뉴스 생산 기능이 축소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런 환경에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대안 언론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뉴스라는 생태계는 살아나야 하고,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신문을 살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뉴스생태계에 기여하는 언론사를 찾아 지원하여 양질의 뉴스가 꾸준히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권력 및 환경, 보편적 가치(자유, 평등, 박애, 평화, 공동체 등)에 대한 감시가 필요합니다.



Q. 혁신을 지향하는 언론에게는 좋은 인력(기자) 등이 필요하고, 이는 자본(돈)과 연결됩니다. 다양하고 건강한 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공산품이 아닌, 차별화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뉴스생태계에 있어 뉴스를 유통하는 포털의 영향력이 막대하지만, 생산된 기사를 반드시 포털에 제공할 수 있어야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상품이 홈쇼핑이나 대형마트에 들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반대로 동네슈퍼, 편의점과 같이 그렇지 않아도 살아남는 기업이 있습니다. 편리성, 접근성이 좋고, 일상과 밀접한 생필품(급하게 갔을 때)을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포털에 들어가야만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들어가지 않아도 살아남는 매체가 있습니다. 유통시장을 잘 살펴보고 고민해봐야 합니다. 정치뉴스는 공산품이고, 사회, 연예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공산품은 이미 기존의 강력한 매체가 점유하고 있으니, 같이 경쟁해서는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겟으로 삼는 청중이 항상 찾는 것은 무엇이고, 급할 때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일까?’ 고민해봐야 합니다. 


‘콘텐츠의 차별화, 참여 유도, 포맷의 혁신 필요’


나아가 특성화를 통해 명확한 컨셉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 구찌 매장은 백화점(유통사)을 거치지 않고, 단독 매장을 가지고도 살아남습니다. 나름의 특성과 이미지가 명확하기에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국내에도 이와 같은 특성화된 언론이 있습니다. 이러한 언론들은 컨셉이 명확하고 각각이 가진 차별화된 특성이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독자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거나, 다른 매체와 다르게 두터운 필진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편의점 식으로 가든가 특성화 매장 쪽으로 가든가 선택이 필요합니다. 또한 타겟을 선정하여, 타겟과 관련된 이슈에 집중해야 합니다. 작은 언론사는 모두 다루기도 힘들뿐더러 메이저 언론사와 경쟁에서 이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편하게 듣고 읽힐 수 있게 포맷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카드 뉴스, 동영상, 인포그래픽(ex. EBS의 지식채널 등)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고 또 다른 포맷(JTBC 뉴스룸 등)을 고민해야 합니다.


나아가 뉴스의 생명은 맥락과 단편적인 팩트가 아닌 종합적인 팩트입니다. 그러므로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뉴스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떻게 하면 참여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뉴스펀딩을 하거나 네트워크(SNS 등)를 활용하여 참여시키는 방식입니다. 앞으로 유능한 기자는 출입처(기관, 기업 등)에서 정보제공자 한 명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뉴스의 팩트를 검증해주고 보완해주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기자의 역할 또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면에 나섰다면, 기자(언론인)는 뒤에 머무르고 대신 전문가를 앞에 내세우기도 합니다. 기자가 모든 것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정리하여 전달하는 과정에서 제3자는 그 일부만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기자(언론인)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이 기자의 것이기 때문에, 기자의 이야기를 그 사람을 빌려 다른 포맷으로 전달하는 것 뿐입니다. 다시 말해, 색다른 포맷을 통해 독자와 만나게 해야 하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문화가 가져온 불가피한 변화이자, 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Q. 언론 이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금융(경제), 정치 등에 꾸준히 관심’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뜻하지 않게 처음으로 일한 곳은 금융권이었습니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아 탈출 겸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정치, 언론 등을 공부했습니다. 그 덕분에 세상을 많이 배웠고, 질문하는 것도 중요시 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기반이 나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외신은 당시에 왜 그런 보도를 했을까?, 단순한 실수일까 아니면 전략일까?’ 등이 궁금해서였습니다. 석사는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달러시스템, 군사 및 정보시스템 등에 관심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세력과 구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보이지 않는 세력 등을 보면서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무섭게 덤벼들면 바꿀 수 있는 것도 많아’


‘큰 줄기를 던져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조금씩 지형이 바뀌면 많은 것들이 새로워질 것’


무섭죠. 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게 덤벼들면 바꿀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IMF,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재무부의 프로그램을 받아들인 이유는 재무부가 칼을 들이댄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이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당시 엘리트가)하고, 국민을 설득시킨 것이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시의 경제모델, 엘리트들의 의식이며, 이를 바꾸어야 합니다. 먼저, 큰 것을 풀고 갑론을박 하면서 담론을 통해 설득하고…, 성과가 나오면 좀 더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경제 모델을 바꾸고, 또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고…. 강줄기가 되는 큰 문제(이슈)를 띄워놓으면 나머지는 하나씩 해결이 될 것입니다. 지형이 바뀜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새롭게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에 있어 현재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수출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중국, 일본 등과 같이 아시아 연합(유로존과 같이)을 추진하면, 수출의 상당 부분은 내수로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 대기업만 살찌우는 것이 아닌 내수 확대를 통해, 희생되었던 많은 것이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수출을 위해 많은 것들이 희생되어 저 또한 이를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Q. 우리나라 엘리트,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면?


‘지식만이 아닌 종합적인 사고와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없어’

‘더 큰 문제는 섞이지도 않고, 무서우리만큼 소통도 하지 않아’


지식의 재생산 시스템 측면에서 보면, 국내에서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똑똑하지 않을뿐더러 실질적인 역량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최고위직에 있는 분들이라고 해서 대단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시야가 좁고 왜곡되어 있습니다. 진보라는 사람들은 국가가 없고, 보수라는 사람들은 계급에 대한 의식이 없고….


제가 보기에는 한국 사회는 정치, 행정, 실무 등 종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많은 병폐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폴리페서(polifessor,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정치도 실무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어, 외국의 경우 교수가 행정부에 들어가면 국장이나 실장을 하지, 장관을 하지 않습니다. 실무 경험이 있어야 종합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는 명예, 권력을 위해 움직이니 문제입니다.  

 그렇다보니 기자는 기자, 정치가는 정치, 교수는 교수 일만 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주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거의 섞이질 않아 무서우리만큼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속으로 ‘이것도 모르면서…’, ‘논문만 쓸 줄 알면서…’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 성공적인 대화 공간은 거의 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각 개인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와 영역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석희 씨가 모 여대에서 계속 교수로 있었다면, 이렇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분에게 교수는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Q. 우리 사회에서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문제제기만 할 뿐, 씨앗을 뿌리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적어’

‘외골수 보다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듣겠다는 자세가 필요’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존재가치, 바람직한 모습, 언론다움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관심이 없거나 외골수이기 보다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듣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선언적, 규범적 이야기만이 아닌 액션플랜을 짜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를 보면 문제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파고드는 분위기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한번 풀어보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같이 풀자고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분위기가 없을까?’ 생각해보면, 같이 연구하는 해석 공동체가 부족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외국의 경우, 끝없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수정하면서 브레인스토밍이 일어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한 자리가 있어도 기자들은 먹기 살기 바쁘고, 윗분들은 정치적 어젠다 때문에 왔다가 그냥 가버립니다. 교수들도 논문 쓰고 프로젝트 하느라 바쁘고요. 냉정하게 말하면 사회문제에 대해 크게 관심 갖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니 모든 이슈에 있어 상식적인 수준에만 머무르니 안타깝습니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 축적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나 인터넷 정보로 알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많은 자료를 가지고 통찰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가 반복되고 변화가 없어요. 더 구체적인 것을 하면서 씨앗을 뿌리고, 기다리고,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론’이라는 개념 하나를 깊이 들어가면서 업적을 이룬 것처럼 말입니다.


Q. 인격과 지혜를 갖춘, 의식 있는 분들이 모여 사회를 리드했으면 하는데, 잘 안 되는 이유는?


‘리드하는 어른이 보이지 않아, 구체적인 논의의 장이 부족’

‘보이지 않는 벽과 견제가 존재, 학문 간, 사람 간 소통 부족’



먼저, 덕망 있는 원로들이 자리를 만들어 주도를 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젠다를 정하자!, 무엇이 문젠가?’ 선뜻 나서주시는 분이 계셔서, 구체적인 실현방안까지 나올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국내에는 그런 어른들이 잘 보이지 않고, 혹은 자신들의 어젠다만 논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는 것과 무섭게도 분파주의, 학문 간의 벽이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능력 있는 교수님들은 프로젝트가 많고, 독일, 일본, 미국,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들에 따라 접근방식(논문 작성 등)도 달라 보이지 않는 견제와 벽이 있습니다. 또한 문제해결을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지혜가 필요한데, 자신의 분야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는 지식 사대주의, 언론의 문제, 청년실업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문제를 제기하면 와 닿지 않아서 인지 따라오지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변화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한 번 해보자’ 시작만 하면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변방의 지식인’이라는 말을 하는데,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반도 문제, 경제문제 등에서 담론을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야합니다. 나아가 여론을 형성하여 정책에 반영시켜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데이터가 부족하고, 통찰력 있는 담론도 나오질 않습니다. 담론의 깊이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고, 감히 남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주제 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변화’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 번 해보자’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추진하고 있는, 혹은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깨어있는 분들, 지혜와 덕망 있는 분들을 모아 싱크탱크를 만들고 싶어’


제가 40대 후반인데, 제 나이대가 다른 선진국을 봐도, 사회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인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주로 6~70대의 사람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분위기도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이끌고 나가는데, 어떻게 보면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한국의 언론이 어떻게 가야할까? 이런 문제를 꾸준히 얘기하고 답을 찾아내고 싶은 욕망이 있고 어떻게 풀어야 될지 고민 중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언론, 경제(금융), 정치 등에 경험이 있어 좋은 분들을 찾아 싱크탱크(두뇌집단 혹은 지식집단)를 꾸밀 계획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돈과 인재도 많은데…, 개인 차원에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은 제가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좋은 분들이 주변에 없는 것 같고, 준비가 되면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명한 원로 분들이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 플랜을 짜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분들이 아직까지 안 보이는걸 보면, 없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제 나름대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미약한 일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라, 깊이를 더 찾아야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위원 (2015. 7. 23. 더 굿 인 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