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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언론복합체 시대


<박근혜의 남자들... 7인회>



 

성산포 시인으로 알려진 이생진은 바다와 관련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의 시 <보고 싶은 것>에는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을 감으면 보일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있는 것처럼 보일거다”는 구절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기를 맞은 한국 사회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충고다. 혼란을 부추기는 것 중에서도 국회의원에 대한 사상검증, 국가원수모독죄, 포퓰리즘 논란이 가장 두드러진다.

  1986
년 신민당 유성환 의원은 국회 본회의를 통해 “이 나라의 국시(國是)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유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고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9개월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현직 법관과 군인의 대통령 비판에 대한 검찰의 기소 역시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 제정되었다가 1988년 폐지된 국가원수모독죄를 연상케 한다. 반값 등록금과 무상급식 논란 과정에서 등장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도 원래 1980년대 남미의 외채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듯 냉전은 끝났고, 권위주의 정부는 무너졌고, 양극화의 심화와 사회안전망의 붕괴로 인한 경제민주화 요구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30년 전 괴물이 2012년 현재 시점에서 부활한 것은 왜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보수언론이 주도하고 정치권과 대기업이 공조하는 언론복합체(press complex)라는 철의 삼각 동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 이익집단의 유착관계를 의미하는 복합체란 개념은
1961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고별연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알려진 매카시즘(McCarthyism)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고 베트남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미국 사회의 이러한 문제 이면에는 민간군수업체, 국방부와 의회 간 형성된 군산복합체가 있으며 이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면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 안보불안 심리를 악용하는 이 복합체의 실체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도 건재를 확인했다. 복합체는 그 이후 반복적인 금융위기를 통해 천문학적 이윤을 실현하는 재무부-월가-복합체(Wall Street Treasury Complex)로 파생되었다. 민간 군수업체가 의회와 관료조직을 포섭한 것처럼 이 복합체의 주도세력은 월가 은행권과 재무부 및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포진해 있다. 부시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 행크 폴슨과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졸릭은 모두 골드만 삭스 출신이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과 IMF 부총재 스탠리 피셔는 시티그룹과 관련이 깊다.

 1990
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언론복합체 역시 이들과 닮은 점이 많다전쟁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지만 군수업체는 매출과 순익을 늘린다. 금융위기는 정부, 기업과 개인 모두를 파산시키지만 국제 핫머니와 투자은행은 떼돈을 번다. 정치적 혼란과 일상적 불안감은 정보에 대한 목마름을 부추기고 정보를 매개로 돈을 버는 언론기업에게는 오히려 호재다. 공통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분파적 이해관계를 먼저 챙기고 그 비용은 공동체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는 말이다.

 
월가 출신의 CEO가 미국 재무부와 IMF 등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는 것처럼 언론계 출신 인사들은 정부와 대기업 및 국회로 자리를 옮기거나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군산복합체는 광신적 애국주의인 쇼비니즘(chauvinism)을 이용하고 월가복합체는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를 이론적 토대로 삼는다. 언론복합체의 이론적 무기는 자신들은 우매한 대중을 이끌어야 하고, 대중은 정치인의 선동에 쉽게 휩쓸리며, 진정한 국가이익은 자신들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선민사상(elitism)이다. 쇼비니즘,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등은 이 과정에서 적절하게 동원된다.

  그러나 다른 복합체에서 보조 역할을 한 것과 달리 여기서 언론기업은 자신에게 유리한 아젠다를 직접 제기하고
, 다른 동맹 세력을 지휘하며, 공포감을 조성함으로써 대중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 갈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를 부추기고, 집단적 이지메를 통해 소수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나아가 특정한 관점과 태도만을 조장한다. 군산복합체를 경고한 이후에 베트남 전쟁은 절정에 올랐고 월가복합체 논란 이후에 글로벌 금융위기는 일상이 되었다.

  
언론복합체의 광기는 종북주의와 포퓰리즘 논란 사태에서 너무 뚜렷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담론이 공개적이고 자유롭게 경쟁할 때 보다 인간적이고 행복한 질서는 가능하다. 언론복합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저널리즘학연구소, 김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