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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위험 수위의 미국 사대주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한족의 명나라를 파죽지세로 쳤다. 임진왜란 당시 도움을 청했던 조선이 명나라의 원군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광해군은 강홍립이 이끄는 군사 1만을 보내는 대신 이들로 하여금 청나라에 투항하게 함으로써 패권 다툼에서 비켜섰다. 당시 조정의 실권자였던 서인들은 분노했고 인목대비 폐위 사건을 빌미로 왕을 내쫒았다.

권좌에 오른 인조는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명나라에 충성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대만으로 옮겨가 있던 정성공 세력은 물론 나중에‘삼번의 난’을 일으키는 오삼계와 몽골의 준가르 세력에게 사신을 보내 협공을 제안했다. 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명을 지원했던 조선의 산하는 1636년 청나라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그 이후 조선은 강희제로부터 건륭제로 이어진 청나라의 황금기를 철저히 외면했고 쇄국의 길을 걸었다.

명나라는 1644년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조선은 명나라의 은혜를 추모하기 위한 대보단(大報檀)과 명나라 황제를 모시기 위한 만동묘를 1681년과 1703년에 각각 세웠다. 조선은 스스로 작은 중국(小中華)이 되기를 열망했고 국익을 무시한 사대주의는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2012년 현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과거와 비할 바 아니다. 국제연합(UN)의 사무총장에 이어 한국계 김용 다트머스대학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되었다. 지난 2010년 한국은 선진국모임 G20의 의장국으로서 당당하게 서울선언을 이끌어냈다. 금년 3월에는 또 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한류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중동으로 아프리카로 확산되고 있은 가운데 한국 선수들은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피겨스케이팅, 골프와 축구 등에서 연이어 세계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자랑스러움의 이면에는 드디어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사대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한국인 위상 드높인 김용 세계은행 총재 지명”“반갑고 뿌듯한 김용 세계은행총재 후보”“한국인 최초 세계은행 총재... 오바마의 히든 카드”김용 총장의 후보 지명과 관련된 보도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탁월한 용인술로 신흥국의 마음을 녹인 지도자로 한국을 유난히 사랑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세계무대에서 코리안 신화가 이어지고 한국인의 우수성이 증명되었다는 말도 있다. 지난 2010년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드디어 국제경제질서를 주도하기 시작했고, 국격이 상승했으며, 미국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팽배했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서 다음과 같은 불편한 진실은 찾기 어려웠다.

1998년에 들어서면서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의 부작용은 본격화 되었다.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대규모 부도가 발생했다. 금융자유화로 인해 우량한 기업들이 대규모로 해외로 팔려 나갔다. 정부의 긴축재정으로 인해 민간소비는 급속히 위축되었고 경기불황이 뒤따랐다. 정부의 석유보조금 철폐로 인도네시아에서는 대규모 정치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당시 IMF 정책이 실수였다는 주장은 자매기관인 세계은행 내부에서도 확산되었다. 조셉 스티글리츠는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였으며 재무부와 IMF가 가장 꺼리는 인물이었다.

마침내 1999년 재무부의 실력자였던 로렌스 서머스는 연임을 원했던 제임스 올펜손 세계은행 총재를 압박해 그를 해고했다. 스티글리츠는 해임 직후부터 IMF의 교만과 전문성 부족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한편,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1993년 세계은행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하던 로렌스 섬머스는 재무부 차관을 거쳐 장관으로 승진했다.

한국 외환위기 당시 IMF의 허버트 나이스 단장을 지휘했던 데이비드 립턴 차관보는 현재 IMF 수석부총재다. 1944년 설립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IMF 총재는 유럽에서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에서 임명한다는 불문율은 깨진 적이 없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부정할 수 없지만 한국이 G20 의장국이 되는데 있어 미국의 지원은 결정적이었다. 김용 총장을 세계은행의 총재로 임명한 것 역시 미국 정부의 절묘한 전략이었다. 지난 2010년 G20 의장국을 맡음으로써 한국은 투기자본규제, 국제신용 평가회사 개혁, 아시아통화기금을 포함한 지역간 금융협력과 같은 미국이 원하지 않았던 의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다.

한국계 세계은행 총재의 탄생에 흥분한 결과 한국은 이번에도 미국의 과도한 권력 행사,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전문성 부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외면했다. 브라질이나 멕시코 출신의 경제학자가 아닌 한국계 의료전문가인 미국인이 세계은행 총재에 임명됨으로써 국가이익에 어떤 기회와 손실을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월터 리프만은『여론』이라는 책을 통해 언론은 깜깜한 밤의 전조등으로 국민은 언론이 비추는 데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인터넷 등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언론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국민은 언론이 제공하는 이러한 공적지식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여론을 형성하며,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결정한다.

17세기 조선의 백성은 사대부를 따랐고 21세기 우리는 언론의 안내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패권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엇이 국가를 위하는 길인가를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은 참 많이 닮았다.

(신동아 5월호, 투고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