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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현장/핫토픽

<디플로마: 지역신문의 디지털 혁신>

<디플로마: 지역신문의 디지털 혁신> 해외과정 개요


▣ 기 간 : 2013년 5월 12일 ~ 5월 19일


▣ 장 소 :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


▣ 참가자


정오복(경남신문), 박준수(광주매일), 김일환(광주일보)

반상훈(대전일보), 박정미(부산일보), 임영섭(전남일보)

하대성(전북도민일보), 김양환(광양신문), 정인서(시민의소리)

정창영(옥천신문),오영상(해남신문)

김성해(대구대), 신윤진(한국언론진흥재단)


▣ 기획 의도


디지털 환경은 저널리즘 생태계에 혁신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뉴스 생산는 다양해졌고, 전통적인 생산방식에는 혁신이 도입되고 있다. 뉴스를 유통시키는 플랫폼은 급격하게 증가했고 소비자가 뉴스를 소비하는 양상도 급변했다.


재단에서 발행한 ‘신문과방송’ 1월호 특별부록 ‘저널리즘, 디지털에 길을 묻다’는 이러한 미디어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해외 언론사들의 여러가지 대응 방안들을 다루었다. 이 책은 가장 역동적으로 디지털 환경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해외 언론의 구체적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다. ‘디플로마-지역신문의 디지털 혁신’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디플로마는 ‘저널리즘, 디지털에 길을 묻다’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을 공유하면서 미국의 디지털 혁신 사례를 분석하고 국내 지역신문들이 나아 갈 방향을 가늠하고자 했다. 특히 디지털 혁신의 발아와 성장, 확산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인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매체들은 우리 지역신문사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으로 판단했다. 무정형하다고 할 정도로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실험들은 국내에 직접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성공과 실패 속에 담긴 교훈들은 무심하게 지나쳐갈 수 없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신문의 디지털 혁신> 해외과정의 의미와 성과


디지털 혁신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야



김성해 / 대구대 교수

(visionofsea@hotmail.com)


 일주일에 걸친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디지털 혁신 사례를 직접 방문하고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기회였다. 여전히 많은 것이 부족하고 제대로 모르는 것이 많다. 그렇지만 다들 나름 견문을 넓히고 뭔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말을 한다. 만족도가 비교적 높았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안내자로, 전문가라는 어쭙잖은 자격으로 또 연구자로서 처음에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지금은 정말 잘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미국 저널리즘의 현장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던 2010년과2012년은 분명 또 달랐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봤고, 무엇보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를 찾을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산외산 천외천(山外山 天外天"이다. 혁신의 현장도 존경할 만한 인물도 참 많았다. 동행했던 일행 모두 속된 말로 ‘한칼’은 다 있는 분들이었다. 역사가 있었고, 관록이 있었고, 전형적인 외유내강에 속했

다. 전체 일정을 정리하면서 무엇을 배웠고 또한 학계와 언론계에 적용할 수 있는게 무엇인가를 정리해 본다.


연수 일정은 뉴욕시립대(CUNY)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출발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인근에 도착했고 먼저 뉴욕 공공도서관을 찾았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는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했지만 지식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도서관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맨해튼 지역에만 공공도서관이 20개가 넘는다는 사실도 놀랍다. 뉴욕의 힘이랄까? 지식을 통한 세계 경영을 피부로 느낀다. 한국 지식인이나 언론인이 갖는 '지식의 얕음'에 대해서 일행들과 열띤 토론도 했다. CUNY 저널리즘 대학원은 2006년 지금 장소에 개설되었다고 한다. 2005년 컬럼비아 대학원개편 등과 맥락이 이어지는 부분이다. 글로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지식 중심의 멀티형 언론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배경이 된 것 같다.


keepr.com에 관한 특강을 들었다. 홍큐라는 강사가 진행했고 예전 한국에서 아는 선배가 하려고 했던 것과 유사한 작업이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활동하는파워 블로거를 추적함으로써 언론인들이 복잡한 사안이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주요이슈에 대한 '핵심'을 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무료 사이트라고 했다. 제레미 카플란이라는 비교적 젊은 교수가 진행하는 과목이었는데 그는 현재 니먼재단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정식 과목명은 '창업가 저널리즘'이었는데 뉴스와 비즈니스 통합, 새로운 인터넷 매체에 대한 창업훈련, 저널리즘 관련 상상력과 현장을 연결하는 참신한 시도였다. 전체 인원은 겨우 20명에 못미쳤고 저널리즘 대학원 전체 입학생 200명에 비하면 미미했다. 그러나 향후 전망

은 상당히 좋을 것 같았다. 학생들이 직접 설립한 성공 사례로 내러티브 전문사이트인 ‘Narratively, Skillcrush, Broad Experience' 등이 흥미로웠다.


강의실을 비롯해 주요 시설을 둘러본 다음 학생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NY CityNews Service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 전반에서 확인되고 있는 현상인데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매체" 그리고 "학교와 외부 언론사의 협업관계" 였다. 뉴욕시립대라는 특성, 비교적 저렴한 학비 등으로 인해 입학은 상당히 까다롭다고 들었다. 뉴욕 공동체에 기여할 것에 대해 일종의 '각서'를 쓴다는 것도 흥미롭고 졸업생 중 일부는 지역매체에 종사하게 된다는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었다. 뉴욕시립대 및 학교 전용 온라인 매체 방문은 오후 5시경에 끝이 났다. 피자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 다음에는 타임스퀘어, 록펠러센터, 뉴욕타임스 등에 잠깐 들렀다. 맨해튼에 전 세계언론이 모여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산책이었다.


뉴욕 둘째 날 일정은 좀 일찍 시작했다. 아침 7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해 약 2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려 롱아일랜드에 있는 뉴스데이(News Day)를 찾았다. 국내 지역 일간지와 비슷한 상황을 가진 이 신문이 디지털 혁명을 어떻게 헤쳐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웹사이트와 종이신문을 위해 하루에 두 번 편집회의를 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웹을 담당하는 에디터도 이 편집회의에 참가한다는 것이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고 일행 중 누가 말했다. 편집회의를 참관한 다음에는 웹 전략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웹 디자인을 하는 사람을 포함해 모두 60명 정도가 소셜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관리, 동영상 등을 맡고 있다고 했다. 국내와 달리 이들은 '일반 기자'와 차별은 없었고 저널리즘에 반드시 특화된 경험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탐사보도 전문 언론사로 잘 알려진 프로퍼블리카

(Propublica)를 방문한 것은 오후 4시경 이었다. 행정관청이 모여 있는 지역에 있는 빌딩의 23층에 위치했고 입구에서 신분증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탐사보도로 잘 알려진 워싱턴의 공공청렴성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가 백악관에서 불과 3분 정도 거리에 있었던 것처럼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어야 제대로 감시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시대의 역설을 봤다. 홍보업무 및 대외 부분을 총괄하는 부회장 마이크 웹은 친절했다. 현재 약 40명 가까이 일을 한다고 했다. "파트너십"을 통해 작업을 하고 자사에서 직접 보도하는 기사와 제휴 기사의 비중은 '중요도'가 높은 기사의 경우 50% 정도라고 했다. "명품" 전략과 "대중성" 전략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블룸버그가 처음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활 용했던 전략이었다. 당시 블룸버그는 뉴욕타임스에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 했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뉴욕타임스의 경제뉴스를 장악했다.


뉴욕 일정 사흘째를 맞아 다시 미국 저널리즘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컬롬비아 저널리즘 전문대학원을 찾았다. 다른 대학과 달리 학부과정에 저널리즘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과 광고 및 홍보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치 에서 성공하려면 하버드를 나오고 언론에서 성공하려면 컬럼비아를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퓰리처상 수상 위원회도 잠깐 들렀다. 2010년 방문할 때 만났던 시그 기슬러(Sig Gissler) 위원장은 잠시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했다. 지난 1월 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했던 <저널리즘, 디지털에 길을 묻다>라는 번역서의 원본을 펴낸 토우센터(Tow Center for Digital Journalism)가 있는 곳이었다. 미국을 방문할 때 마다 느끼지만 문제는 건물이나 사무실이 아니다. 이곳 역시 자그마한 공간으로 실제 상근으로 일하고 있는 분도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 지식사회의 실용주의적 접근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집단지성을 실현할 수 있는 네트워크, 통합, 편집, 기획 능력이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선정해, 그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상(재정 및 명예)을 하고, 공적 자산이라는 것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 그게 미국식 지식 생산의 힘이다.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고의 전문가가 모여 작업을 마치면 곧바로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이 된다. 대부분 무료일 때가 많다. 자연스럽게 지식의 권위가 축적되고, 아이디어의 전파를 통해 리더십을 얻게 된다.저녁 6시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약 6시간 30분 정도 비행을 한 다음 뉴웍에 있는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 시간이 늦어 김밥과 컵라면으로 때웠다. 일행에게는 좀 미안한 일정이었지만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뉴욕에만 머물 수도 없고, 워싱턴이나 보스턴을 가도 이 정도의 시간은 걸릴 것이고 디지털 혁신을 위해서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샌프란시스코였다.


디지털 혁신의 현장은 유감스럽지만 물리적인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블로그형 언론사로 잘 알려진 허핑턴포스트(Huffinton Post)나 패션과 첨단 유행을 뉴스레터 형태로 전해주는 캔디(Candy.com)와 같은 혁신 사례를 방문하고자 했지만 1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공간 자체가 없었다. 매출액 규모에서는 웬만한 대기업에 버금가는 회사들이 최소한의 공간과 인력으로 디지털 시대를 주도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국내 언론사들은 그렇게 보면 너무 덩치가 큰 공룡에 가깝다고 할까.


원래 샌프란시스코 일정은 4개였다. 일찍 서둘러 4일째 일정을 시작했다. Palo Alto Patch를 관리하는 AOL의 스테이시 챈이란 지역매니저를 만났다. 패치라는 독특한 모델에 대해 제대로 배운 시간이었다. 모두 AOL에 의해 직접 고용되고 13개패치 자회사를 관할한다는 것. 현재 900개 이상의 패치가 존재한다는 것. 1인 편집자로 움직이는 초지역 밀착형 온라인 매체가 서로 '네트워크'된 형태라는 것도 알았다. 작업 환경은 나름 좋았고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사무실 분위기도 좋았다. 관심 있는 주제, 경영전략, 수익성 등 여러 질문이 오갔고 좋은 경험담을 들었다.


나이트 디지털 센터(Knight Digital Media Center)는 미국 명문주립대로 알려진UC 버클리 대학에 있다. 정식 교수가 아닌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제리 소장이 친절하게 PT를 해 주셨고 대학원 입학담당자가 나와서 학교 전반에 대해 설명했다. "멀티미디어"를 두루 다룰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언론인"를 지향한다는 것. 1학기에 들어오면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초지역밀착형(Hyper local) 온라인 매체에서 의무적으로 인턴을 밟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저널리즘 대학원에 입학하는 인원은 100명도 채 못 된다는 것. 기본적으로 현업에서 5년 또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입학을 한다는 것. 반드시 언론인 경력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이곳을 졸업하면 복합 플랫폼을 두루 넘나들 수 있으면서 자신의 세부 전공을 가진 전문 인력으로 거듭난다는 것. 버클리가 가진 장점은 참 많았다. 그 다음으로 캘리포니아 와치(California Watch)를 찾았다.


2010년 이후 미국 저널리즘의 현장을 방문해 왔던 필자는 이번 탐방을 계기로 미국의 3대 탐사보도 전문매체를 모두 방문했다. 온라인을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한다는 것. 기부금과 콘텐츠 판매 및 정기구독자 모집 등을 통해 재정독립을 이루고 있다는 것. 미국 주류 언론의 틈새인 탐사보도 영역에 특화하고 있다는 것. 주제에 따라 짧은 것은 1주일, 긴 것은 1년 이상의 투자를 한다는 것. 전문기자 혼자서 하기 보다는 정보원과 일반 시민 등이 협업으로 진행한다는 것. 탐사보도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많은 선량한 민주적 시민이 있다는 것. 언론의 존재 목적이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일 수 있다는 것과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 가장 강력한 추동력이라는 것. 방문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이었다.

 물론 다른 비영리 언론사 모델이 겪는 공동의 난관을 캘리포니아 와치도 겪어 왔다. 독지가들은 기부를 결정하기 전에 이러한 언론사가 실제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알고 싶어했다. 로젠틸 소장은 캘리포니아 주립병원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의 도덕적 해이를 고발하는 기사를 통해 이를 증명했다. 기부금과 후원이 속속 늘어났다. 그가 처음 소장을 맡았을 당시 100만 불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1100만 불로 늘었고 편집국 인력 또한 10명에서 70명 이상으로 늘었다. “시련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나의 고단했던 경험이 오히려 신뢰를 얻는 자산이 되었다”는 그의 고백은 큰 울림을 주었다.


마지막 일정은 스탠포드 대학과 페이스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캠퍼스로 알려진 곳으로 매번 갈 때 마다 놀란다. 참 매력적인 학교다. 구글, 야후, 휴렛페커드 등 디지털 시대의 기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모두 이 대학에서 출발했다. 캠퍼스 곳곳에는 이들 회사가 기증한 건물이 숨어있다.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가장 우수한 양질의 인력을 공급받는 곳. 그곳이 팔로 알토(Palo Alto)란 지역이다. 미국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꿈의 직장 페이스북도 이곳에 있다. 외부인에게는 지독하리만큼 배타적이지만 자기 식구에겐 무한대로 관대하고 열린 곳.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구글 등이 갖는 특징이다. 최고의 실력자를 영입해 그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지원하고 그 성과를 합리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이들 기업의매력이다. 계약직이라고 해서 월급이 낮다거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법은 없다.


정규직과 달리 계약직은 사무실 임대 및 컴퓨터 사용 등에 따르는 비용이 필요하지않기 때문에 그 비용만큼을 임금으로 보전해 준다. 미국식 노동유연성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겉으로만 모방한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미국은 방문할 때 마다 놀라움을 준다. 누군가 언론제국이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제국의 자기 혁신은 놀랍다. 1970년대 언론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을 때 지금의 탐사보도를 처음 시작했던 것은 CBS,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였다. 워터게이트와 펜타곤페이퍼 등이 그 당시 개혁의 산물이었다. 1990년대 공공저널리즘 운동이 진행되었던 것 역시 권력화 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내부의 저항이었다. 미국 언론은 위기의 징후를 방관하지 않았다. 많은 신문사들이 그때부터 혁신을 위한 몸부림을 했다. 지역 속으로, 지역민과 함께, 지역의 고민을 해결하는 언론의 변신은 이때 이미 싹을 틔운 것으로 봐야 한다. 디지털의 도전을 대하는 미국 언론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최적의 모델을 찾아낸다. 학계, 언론계, 싱크탱크 등이 이 작업에 동참한다. 뉴스 생산자를 위한 교육만이 아니라 성숙하고 현명한 소비자를 위한 뉴스 리터러시 운동도 왕성하다.1990년대 중반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잠깐 국제사회를 닮아가고자 했던 한국은 이점에서 여전히 우물 안의 개구리다. 미국이 무조건 잘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은 견고하고 대외정책에 있어 미국 언론의 애국주의는무섭다. 그러나 제국 내부에서 자신들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배울 점이 있다. 제국이 앞서 혁신을 주도하는 가운데 우리는 늘 따라가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짙은 아픔을 되새기고 왔다. 우리가 보고 느꼈던 것이 찻잔 속의 태풍이 되지 않아야 하고 공동체 전역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매순간 진지하게 배우고 치열하게 사고하고 또 돌아와서도 각종 워크숍 등을 통해 씨앗을 뿌리는 언론인들과 함께 해 영광이었고 그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