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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이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이런 나라는 없다. 정보기관이 남북정상회담의 국가기밀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그 내용마저 나쁜 것은 더하고, 좋은 것은 빼고, 혹은 비틀어서 왜곡한다. 집권 새누리당은 이를 빌미로 벌떼처럼 전직 대통령에 대해 부관참시의 주먹질을 한다. 조중동 등 자칭 주류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확성기 나팔을 불어댄다. 대통령은 격려하듯 때맞춰 추임새를 넣는다. 그 주요목적은 정권유지, 그 이상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마사지 정치’가 추구하는 나라다.


 사실 마사지 정치는 이명박정부가 원조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특허 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때로는 숨기고, 적절히 과포장하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 축소조정하기도 한다. 청와대의 편집‧보도국장 역할을 하며 대통령의 문제발언을 마사지해 둔갑시키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작업이다. 외국정상의 발언 역시 필요에 따라 마사지하는 것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마사지 논란은 이명박정부 내내 계속됐다.


 2010년 1월 있은 영국 BBC방송의 이 대통령 인터뷰는 마사지 발언의 정교한 진면목을 보여준 경우다. 이 대통령은 BBC와의 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아마 연내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이 발언을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바꾼 자료를 배포했다. 이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 드러나자 대변인은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틀 뒤 이동관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말씀은 뭔가 진행돼서 정상회담이 될 것 같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마사지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대통령의 실제 발언은 남북정상 회담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이를 차단하기 위해 마사지한 것이라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이로부터 ‘마사지정치’는 이명박정부의 저작권 재산에 주요 목록이 된 셈이다. 결국 이 사건은 대다수 언론의 ‘양해’로 없던 일이 됐고, 홍보수석의 지원을 받은 대변인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업무에 복귀했다.


 물론 이명박정부의 마사지 정치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백악관 보도자료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없었다. 2010년 8월 간 나오토 일본총리의 한일합병 100주년 사과담화를 놓고, 사과를 ‘사죄’로 마사지해 발표했다. 천안함 사태 직후 이 대통령은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했으나 러시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발표했다. 매사가 이러한 정도니 이명박정부의 마사지 정치를 이루 다 헤아리기는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점은 박근혜정부의 마사지 정치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이를 호도하기 위한 마사지 정도가 이명박정부의 그것을 뺨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의 마사지 발언 정도는 ‘애교’에 불과할 만큼 그 의도가 추악하고 악랄하다. 국정원이 자행해온 불법 선거개입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등 국기문란 사건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에 따른 박근혜정부의 책임도 가려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비열한 행위는 불법 공개한 회의록 내용마저 의도적으로 왜곡, 정치적 논란을 일으켜 국론분열을 심화시킨 점이다. 국정원이 새누리당을 통해 공개토록 한 남북정상회담 발췌본의 내용은 이미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이 마사지 정치에는 언론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들의 나팔수 역할이 여론을 충동하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정부에 장악된 방송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발췌본의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내용을 앞세웠다. 노 전 대통령이 회담에서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의 NLL, 북방한계선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그의 표적 역시 노 전 대통령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원이 최근 작성한 회담 발췌본의 내용은 전문을 교묘하게 마사지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왜곡은 NLL의 존립에 관한 내용이다. 전문에 나오는 “NLL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서 연장선에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발췌본에는 아예 빠져있다. 이 언급이야말로 ‘NLL 유지’를 명시하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나”라고 했는데 발췌본에는 “저”로 바꾸고, “김정일위원장”이라고 말했는데도 “김위원장님”이라고 “님”를 넣어 놓았다.


 마사지 치고는 졸렬하다 못해 창피하기 그지없다. 그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인다. 마사지 정치도 최소한 금도의 격이 있어야 한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 나서 할 일이 겨우 이런 짓인가. 이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1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