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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사회적 기업, 성과는 얼마나 내야 할까


출처 : http://doggish.egloos.com/729867


일요일 저녁 <한국방송>(KBS) 1텔레비전에서 하는 ‘강연 100℃’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물이 ‘비등점’에 다다르면 갑자기 끓어오르듯 내 인생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한순간’을 얘기하는 무대다. 평범한 사람들이 병마와 싸운 얘기, 슬픔의 큰 강을 건너온 얘기, 다들 고개를 젓는 일을 고난 끝에 성취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말하는 사람도 속이 후련해지고 듣는 사람도 함께 치유되는 시간이다. 임성훈씨의 안정감 있는 진행도 보기 좋다.


얼마 전에는 ‘박제된 천재’로 불리는 김웅용씨가 나왔다. 지능지수 210, 기네스북에도 올랐다는 이 세계적 천재는 6살에 고등수학을 풀고 8살에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밟았다. 어릴 적 우리집에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김웅용 어린이가 커다란 칠판에 미적분을 술술 풀어가는 화보집이 있어 여러 번 탐독한 기억이 난다. 어린 나이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연구원으로 스카우트됐으나 적응을 못하고 돌아와 검정고시를 거쳐 지방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의 출연은 반가웠고, 근황이 궁금했다. 50대 초로의 그는 지방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그들이 붙여준 천재라는 허울을 벗고 가족을 아끼고 동료와 어울리며 행복을 찾았다고 했다. 김웅용씨가 강연 말미에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을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묻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 됐다. 공감 온도를 알아보는 순서가 온 것이다. 나는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 눈가를 붉어지게 한 강연자가 혹시 공감 점수가 낮게 나와서, 혹은 출연한 3명의 강연자 중 가장 점수가 낮아서 마음이 상하면 어쩌나 괜히 걱정이 된다. 감동을 안긴 뒤 곧바로 “확 깨는 시간”을 넣은 것은 우리가 모르는 제작진의 깊은 뜻이 있었을까?


‘점수화’가 만능인 시대다. 등수를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학교에서 체화된 터이다.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이 많아지자 학생들이 느끼는 행복도를 설문조사해 교원 성과급과 연계하는 교육자치 지역도 나왔다. 물론 측정과 평가를 무조건 백안시할 일은 아니다. 성과를 객관화해 보상의 공정성을 높이는 것은 나름의 합리성과 민주성이 있다. 대학에 강의평가를 도입하고, 논문 편수에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면서 똑같은 강의노트로 십몇년을 버티던 교수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진보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세상에는 점수화·서열화할 때 오히려 사라지는 것이 많다. 학문하는 열정, 스승의 마음, 내 일인 양 애써주는 정성, 이런 것들이다. 대학 평가와 논문 점수에 매달리면서 진정한 학문 연구가 사라져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협동조합도 사회적 기업도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도 경영을 공시하는 투명함이 요구된다. 하지만 수지타산이 지나쳐 신뢰와 협동, 자발성이라는 사회적 경제의 본질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경제적 목표와 사회적 목표를 조화하는 데는 많은 모색이 필요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 201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