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서 열린 대한제국 마지막에 관한 사진전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대한제국이 공식적으로 망하기 이전과 이후 조선 인민들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을까를 생각했다. 2001년 미국의 공격 이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과 2003년 제2차 걸프전 이후의 이라크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분명 지배 권력의 변화는 엄청난 사회적 문화적 가치관의 변화로 이어진다.
일제 36년을 겪는 동안 모든 가치의 중심에는 일본이 있었지만,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후 가장 좋은 것은 모두 미국이라는 나라와 연결되는 가치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유치원까지 파급되지는 않았고, 위기 이후의 영어광풍은 한국 경제의 미국에 대한 종속심화와 미국계 엘리트의 부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담론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권력의 변화가 있고 또는 칼 맑스의 말처럼 '경제적 이해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선행된다는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정치혁명' 이전에는 반드시 '의식의 혁명'이 있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구한말 동학혁명은 유교적 가치관이 붕괴되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사상이 그 자리를 매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회와 수도원이 독점했던 성경이 보편화 되면서 '종교개혁'이 가능했고, 마르크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론이 있었기에 1917년의 러시아 혁명도 1930년대의 중국 혁명이 가능했다.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가 그람시를 한평생 감옥에 가두어 둔 이유도 '칼' 보다 '이념'의 힘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장 1997년 이후 한국의 변화도 외부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한 양극화와 실업의 구조화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효율성, 경쟁, 영어, 외자유치, 개방'과 같은 가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50대의 3/1 이상이 백수로 전락하고, 대학 졸업자의 50% 이상이 실업자인 사회는 문제가 있다.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50%의 인건비 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60%를 넘어서고, 거의 날마다 자살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극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 간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구조적 폭력에 억눌린 채 약자를 대상으로 한 엽기적 범죄가 난무하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정치혁명을 얘기하고, 혹자는 체념하라고 말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글로벌 시대의 도래로 인한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정리해고제'나 '비정규직'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외환위기는 일부 국가만 겪었고,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국가는 우리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제대로 된 담론을 통해 사회적 통념을 해체함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 비판적 담론기획은 이러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담론기획의 미래를 위해 이론적 실천가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담론기획은 크게 4 단계로 구분해 접근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은 2010년 한국 사회의 가장 적대적인 모순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그 다음 단계로, 이러한 모순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무비판적인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동원된 '담론'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갖고 있는 담론을 파악한 다음에는 이러한 담론이 '생산, 유통, 소비' 되는 장치를 찾아내고, 다양한 유형의 담론을 구분하고, 궁극적으로는 담론별 특성 및 구성요소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최종 단계로, 해체된 담론에 대항할 수 있는 '고품격'의 대항담론을 생산하고, 다양한 차원에 맞게 '전략'적으로 수정하고, 이를 전 사회에 확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적대적 모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적대적 모순이라는 말은 구조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타협'이 아닌 '투쟁'이 불가피하고, 주어진 '질서'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물리적 '충돌' 또는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이 18세기라는 특정한 시기에 왜 '계급간의 투쟁'과 '생산양식이라는 토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 의미가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에는 '농지'라는 생계수단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난 다수의 '실업자'가 존재했고, 자본가들은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일하도록 했다. 다른 생계수단이 없었던 노동자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당시의 지식인들 역시 이 상황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담론 생산에 동원된 상황이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의 가장 적대적인 모순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비정상적인 분배규칙'으로 파악했고, 이 규칙 또는 질서를 무력화 할 수 있는 담론을 고민했다.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도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론'이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등의 논쟁은 1980년대 한국사회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모순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했던 이론적 실천 작업이었다. 냉전이라는 적대적 모순이 무너진 1990년대 이후 학계의 관심이 '거시담론'에서 '미시담론'으로 옮겨간 것도 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냉전의 붕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세력과 러시아와 중국 등의 대륙세력 간에 형성되었던 적대적 모순관계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모순관계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그간 주변부에 머물렀던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던 '상대적' 모순이 '적대적' 모순으로 부상했다. 가령, 페미니즘의 남녀차별, 사회적 약자의 '주류와 비주류' 갈등, '전체의 획일성과 개체의 차별성' 등이 모순의 실체로 파악되었고, 이러한 모순을 정당화하고 있는 가부장제, 내부의 오리엔탈리즘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997년의 외환위기와 그 이후의 '물질적, 정신적' 변화로 인해 한국 사회는 보다 복합적인 '모순'에 직면했고, 그 실체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 중에 있다. 한국이 당면한 위기의 본질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PD, 민중평등)이라는 주장, '제국주의에 의한 주변부의 침탈'(NL, 민족자주)이라는 주장, 또는 세대 간의 소통단절이라는 주장 등이 모두 '적대적 모순'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담론기획은 이에 따라 "2010년 한국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가장 적대적인 모순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또는 합의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적대적 '모순' 또는 '모순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다음에는 그러한 모순이 직접적으로 고통, 착취, 희생, 억압받는 다수의 순응, 동의, 협력을 통해 지속될 수 있는 메카니즘을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칼 마르크스는 노동착취와 계급갈등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데올로기 (또는 담론)를, 페미니스트들은 젠더간 구조적 차별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가부장제(patriarchy) 또는 남성우월주의(machoism)를 지적했다.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에 의한 아랍의 지배를 유지시켜온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을, 푸코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주류 사회의 통제 기제인 '성정체성' (sexuality)을 주장했다. 이를 고려할 때, 그간 진행된 담론 연구에서 '세계화담론, 신자유주의담론, 영어담론, 교육붕괴담론, 양극화담론, 다문화담론' 등이 주목받게 되는 이유는 이들 담론의 개입으로 인해 특정한 모순이 은폐되고, 지속되고, 누군가의 고통을 강요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담론 연구는 기본적으로 '공존, 평화, 사랑, 조화, 정의, 평등, 자유, 행복, 인권'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으며, 좁게는 연구자 자신을 위해 넓게는 연구자가 동일시하는 국가, 계급, 계층, 그룹의 '해방'을 지향하는 '정치적' 행위다.
모순과 관련된 담론의 실체를 파악하는 작업과 이 담론의 작동 기제를 밝히고, 담론을 '해체'하는 작업은 다르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담론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다양한 층위에 걸쳐, 다양한 포맷으로, 복합적인 통로를 통해 확산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위협' 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중국위협 담론은 '실제'에 대한 객관적인 '반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담론을 해체한다는 의미는 중국위협론의 역사적인 맥락, 정치적인 목적, 구성요소, 주요 생산자와 유통구조, 관련된 정책적 변화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위협론은 아시아공동체론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미국내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생산되어 글로벌 언론을 통해 확산되었고, 동아시아 각국의 시민사회 또는 특정한 정치세력을 통해 수용되고, 궁극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상식의 영역으로 침투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위협론은 한때 일본위협론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 전략적인 수정을 거쳐 구축된 우리 사회의 집단기억, 구조화된 인식과 감성체계 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영어담론에 대해서도 동일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를 하지 않으면 실제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영어담론을 부추기는 정치적 이해집단은 누구인지, 그리고 영어에 몰입하도록 강제하는 논리와 증거는 무엇이며 어떤 모순이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언론, 교과서, 대중문화 등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분석해야 하며, 이들 문화적 텍스트 속에 '의식,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위험한 가정과 가치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담론을 해체하는 작업과는 별도로 제대로 된 담론을 생산하고 이를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담론을 해체한다는 것은 마지막 단계인 고품격의 경쟁력 있는 대항담론을 생산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정한 담론에 내포되어 있는 슬로건, 세계관, 핵심가치, 프레임, 논거와 주장을 알지 못한 채 대항담론을 만들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중국위협론에 대한 대항담론 전략을 고민해 볼 수 있다. 1980년대 일본위협론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고립되고, 동아시아 간 협력이 유럽에 비해 한층 뒤쳐진 것처럼 최근의 중국위협론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협력과 지역 내 공동이익에 역행하는 '현실'을 초래할 있다.
그러므로 '중국위협론'이 단순한 담론을 넘어 동아시아 국민들의 '상식'이 되기 전에 '한중일 협력'을 통한 신질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보다 훨씬 심각한 적대관계에 있었던 유럽은 이미 단일한 '경제 및 금융연합'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패권국과 역사적 블록이 갖는 담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중국 혼자서는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없다.
한중일 3국의 학계와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 한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포럼 (East Asia Forum), 중국이 제안한 동아시아싱크탱크네트워크 (Network of East Asian Think-Tanks, NEAT) 또는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공동체위원회 (Council on East Asian Community, CEAC)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지역 내 다양한 담론생산자들을 상호 연결하고, 이들의 담론을 조직적으로 전파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지식생산과 유통수단을 장악한 패권국가와 지배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의미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안적 담론 기획을 꿈꾸는 이들이 연합하는 것, 연합을 통해 '고품격'의 담론을 생산하는 것, 지배담론을 완벽하게 해체하는 것, 그리고 분산형 네트워크 체제를 통해 기존의 '지배적 인식체계와 보편적 정서체계'에 대한 전방위적 개입을 하는 데 있다.
일제 36년을 겪는 동안 모든 가치의 중심에는 일본이 있었지만,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후 가장 좋은 것은 모두 미국이라는 나라와 연결되는 가치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유치원까지 파급되지는 않았고, 위기 이후의 영어광풍은 한국 경제의 미국에 대한 종속심화와 미국계 엘리트의 부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담론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권력의 변화가 있고 또는 칼 맑스의 말처럼 '경제적 이해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선행된다는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정치혁명' 이전에는 반드시 '의식의 혁명'이 있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구한말 동학혁명은 유교적 가치관이 붕괴되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사상이 그 자리를 매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회와 수도원이 독점했던 성경이 보편화 되면서 '종교개혁'이 가능했고, 마르크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론이 있었기에 1917년의 러시아 혁명도 1930년대의 중국 혁명이 가능했다.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가 그람시를 한평생 감옥에 가두어 둔 이유도 '칼' 보다 '이념'의 힘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장 1997년 이후 한국의 변화도 외부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한 양극화와 실업의 구조화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효율성, 경쟁, 영어, 외자유치, 개방'과 같은 가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50대의 3/1 이상이 백수로 전락하고, 대학 졸업자의 50% 이상이 실업자인 사회는 문제가 있다.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50%의 인건비 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60%를 넘어서고, 거의 날마다 자살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극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 간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구조적 폭력에 억눌린 채 약자를 대상으로 한 엽기적 범죄가 난무하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정치혁명을 얘기하고, 혹자는 체념하라고 말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글로벌 시대의 도래로 인한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정리해고제'나 '비정규직'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외환위기는 일부 국가만 겪었고,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국가는 우리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제대로 된 담론을 통해 사회적 통념을 해체함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 비판적 담론기획은 이러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담론기획의 미래를 위해 이론적 실천가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담론기획은 크게 4 단계로 구분해 접근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은 2010년 한국 사회의 가장 적대적인 모순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그 다음 단계로, 이러한 모순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무비판적인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동원된 '담론'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갖고 있는 담론을 파악한 다음에는 이러한 담론이 '생산, 유통, 소비' 되는 장치를 찾아내고, 다양한 유형의 담론을 구분하고, 궁극적으로는 담론별 특성 및 구성요소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최종 단계로, 해체된 담론에 대항할 수 있는 '고품격'의 대항담론을 생산하고, 다양한 차원에 맞게 '전략'적으로 수정하고, 이를 전 사회에 확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적대적 모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적대적 모순이라는 말은 구조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타협'이 아닌 '투쟁'이 불가피하고, 주어진 '질서'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물리적 '충돌' 또는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이 18세기라는 특정한 시기에 왜 '계급간의 투쟁'과 '생산양식이라는 토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 의미가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에는 '농지'라는 생계수단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난 다수의 '실업자'가 존재했고, 자본가들은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일하도록 했다. 다른 생계수단이 없었던 노동자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당시의 지식인들 역시 이 상황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담론 생산에 동원된 상황이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의 가장 적대적인 모순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비정상적인 분배규칙'으로 파악했고, 이 규칙 또는 질서를 무력화 할 수 있는 담론을 고민했다.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도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론'이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등의 논쟁은 1980년대 한국사회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모순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했던 이론적 실천 작업이었다. 냉전이라는 적대적 모순이 무너진 1990년대 이후 학계의 관심이 '거시담론'에서 '미시담론'으로 옮겨간 것도 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냉전의 붕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세력과 러시아와 중국 등의 대륙세력 간에 형성되었던 적대적 모순관계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모순관계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그간 주변부에 머물렀던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던 '상대적' 모순이 '적대적' 모순으로 부상했다. 가령, 페미니즘의 남녀차별, 사회적 약자의 '주류와 비주류' 갈등, '전체의 획일성과 개체의 차별성' 등이 모순의 실체로 파악되었고, 이러한 모순을 정당화하고 있는 가부장제, 내부의 오리엔탈리즘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997년의 외환위기와 그 이후의 '물질적, 정신적' 변화로 인해 한국 사회는 보다 복합적인 '모순'에 직면했고, 그 실체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 중에 있다. 한국이 당면한 위기의 본질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PD, 민중평등)이라는 주장, '제국주의에 의한 주변부의 침탈'(NL, 민족자주)이라는 주장, 또는 세대 간의 소통단절이라는 주장 등이 모두 '적대적 모순'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담론기획은 이에 따라 "2010년 한국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가장 적대적인 모순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또는 합의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적대적 '모순' 또는 '모순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다음에는 그러한 모순이 직접적으로 고통, 착취, 희생, 억압받는 다수의 순응, 동의, 협력을 통해 지속될 수 있는 메카니즘을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칼 마르크스는 노동착취와 계급갈등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데올로기 (또는 담론)를, 페미니스트들은 젠더간 구조적 차별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가부장제(patriarchy) 또는 남성우월주의(machoism)를 지적했다.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에 의한 아랍의 지배를 유지시켜온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을, 푸코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주류 사회의 통제 기제인 '성정체성' (sexuality)을 주장했다. 이를 고려할 때, 그간 진행된 담론 연구에서 '세계화담론, 신자유주의담론, 영어담론, 교육붕괴담론, 양극화담론, 다문화담론' 등이 주목받게 되는 이유는 이들 담론의 개입으로 인해 특정한 모순이 은폐되고, 지속되고, 누군가의 고통을 강요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담론 연구는 기본적으로 '공존, 평화, 사랑, 조화, 정의, 평등, 자유, 행복, 인권'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으며, 좁게는 연구자 자신을 위해 넓게는 연구자가 동일시하는 국가, 계급, 계층, 그룹의 '해방'을 지향하는 '정치적' 행위다.
모순과 관련된 담론의 실체를 파악하는 작업과 이 담론의 작동 기제를 밝히고, 담론을 '해체'하는 작업은 다르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담론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다양한 층위에 걸쳐, 다양한 포맷으로, 복합적인 통로를 통해 확산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위협' 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중국위협 담론은 '실제'에 대한 객관적인 '반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담론을 해체한다는 의미는 중국위협론의 역사적인 맥락, 정치적인 목적, 구성요소, 주요 생산자와 유통구조, 관련된 정책적 변화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위협론은 아시아공동체론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미국내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생산되어 글로벌 언론을 통해 확산되었고, 동아시아 각국의 시민사회 또는 특정한 정치세력을 통해 수용되고, 궁극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상식의 영역으로 침투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위협론은 한때 일본위협론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 전략적인 수정을 거쳐 구축된 우리 사회의 집단기억, 구조화된 인식과 감성체계 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영어담론에 대해서도 동일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를 하지 않으면 실제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영어담론을 부추기는 정치적 이해집단은 누구인지, 그리고 영어에 몰입하도록 강제하는 논리와 증거는 무엇이며 어떤 모순이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언론, 교과서, 대중문화 등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분석해야 하며, 이들 문화적 텍스트 속에 '의식,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위험한 가정과 가치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담론을 해체하는 작업과는 별도로 제대로 된 담론을 생산하고 이를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담론을 해체한다는 것은 마지막 단계인 고품격의 경쟁력 있는 대항담론을 생산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정한 담론에 내포되어 있는 슬로건, 세계관, 핵심가치, 프레임, 논거와 주장을 알지 못한 채 대항담론을 만들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중국위협론에 대한 대항담론 전략을 고민해 볼 수 있다. 1980년대 일본위협론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고립되고, 동아시아 간 협력이 유럽에 비해 한층 뒤쳐진 것처럼 최근의 중국위협론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협력과 지역 내 공동이익에 역행하는 '현실'을 초래할 있다.
그러므로 '중국위협론'이 단순한 담론을 넘어 동아시아 국민들의 '상식'이 되기 전에 '한중일 협력'을 통한 신질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보다 훨씬 심각한 적대관계에 있었던 유럽은 이미 단일한 '경제 및 금융연합'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패권국과 역사적 블록이 갖는 담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중국 혼자서는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없다.
한중일 3국의 학계와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 한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포럼 (East Asia Forum), 중국이 제안한 동아시아싱크탱크네트워크 (Network of East Asian Think-Tanks, NEAT) 또는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공동체위원회 (Council on East Asian Community, CEAC)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지역 내 다양한 담론생산자들을 상호 연결하고, 이들의 담론을 조직적으로 전파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지식생산과 유통수단을 장악한 패권국가와 지배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의미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안적 담론 기획을 꿈꾸는 이들이 연합하는 것, 연합을 통해 '고품격'의 담론을 생산하는 것, 지배담론을 완벽하게 해체하는 것, 그리고 분산형 네트워크 체제를 통해 기존의 '지배적 인식체계와 보편적 정서체계'에 대한 전방위적 개입을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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