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의 편집국장으로서 회사 측의 불법적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지만 법원의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부산일보의 편집권의 독립이다. 이를 끝까지 지켜내고 싶어 이런 방법까지 택하게 됐다.”
부산일보 이정호 편집국장석은 사옥 밖에 있다. 현관 밖에 스스로 마련한 책상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앞으로 이와 같은 생활이 얼마나 계속될지 모른다. 그의 결심은 확고해 보인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하다. 그의 당장 걱정은 이 자리조차 지킬 수 있을지의 여부다. 그동안 회사 측은 징계와 소송을 반복해왔다.
그는 지난 4월 회사 측의 징계조치에 따라 대기발령 처분을 받은 상태다. 대기처분을 받은 후 책상과 전화는 물론 노트북까지 회수당했다. 그동안 편집국 한편에 자리를 마련하고 국장직을 수행해왔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 7월 11일 법원이 이 국장에 대한 회사 측의 직무정지 및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 국장이 편집에 관여하거나 건물에 출입할 때마다 10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발단은 부산일보 소유재단인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노조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도록 한 편집권 행사였다. 회사 측은 지난해 11월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등을 요구해온 이호진 노조위원장을 해고했다. 또 정수재단 관련기사의 삭제지시에 따르지 않은 이국장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 이국장은 언론의 기본역할인 공익과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이 기사를 내보냈다고 했다. 법원도 회사 측의 징계이유를 인정하지 않아 편집국장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4·11 총선이 끝난 뒤 다시 그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어 대기처분을 내렸고, 법원이 이번에는 회사측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의 결정이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부산일보는 편집권의 독립에 관한한 한국 언론사에 기억할만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1988년 7월11일 부산일보는 정수장학회의 편집권 개입에 맞서 언론사 노조 최초의 합법적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정수장학회가 일방적으로 선임한 윤임술 사장의 퇴진과 편집권 독립을 위한 편집국장 추천제를 요구가 그 내용이었다. 결국 6일간의 파업 끝에 윤사장의 퇴진과 함께 편집국장 추천제를 제도화했다.
이 국장은 노사간의 단협내용에도 편집권의 독립이 명시돼 있다고 강조한다. ‘편집권은 외부나 경영진의 부당한 압력과 간섭에 의해 침해받지 아니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사회정의를 위해 쓰이도록 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합의에 따라 의해 편집국 조합원들의 추천에 의해 2010년 12월 편집국장에 선임됐고 정당하게 편집권을 행사해왔다. 그것이 회사 측의 계속된 징계와 소송의 배경이 된 셈이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지분 100%를 확보, 사장 선임권 등을 행사한다. 이 장학회는 이 외에도 문화방송 주식 30%와 경향신문 사옥부지 723평의 소유주다. 그러나 이 재단의 역사는 오욕으로 얼룩져 있다. 5.16 군사쿠데타 후인 1962년 군사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당시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씨를 구속했고 김씨는 강압에 의해 자신의 재산을 헌납, 5·16장학회가 설립됐다. 물론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 장학회가 1982년 ‘정수장학회’로 명칭이 변경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딴 것이다.
문제는 이 재단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실소유주’논란이다. 박 의원은 1995년 9월부터 2005년 2월까지 9년간 이사장을 맡았다. 이어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 출신인 최필립씨다. 박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직을 물러난 이상 정수장학회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의원은 정수장학회 해결을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부산일보 이정호 국장은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한다. 박 의원의 결단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국장은 이제 정수장학회의 실질적 사회환원이 이루어져야할 시기라고 말한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믿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이 이루어질 때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 역시 완성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근혜의원은 엊그제 5ㆍ16에 관해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5년 전 대선경선에서 “5ㆍ16은 구국(救國)의 혁명”이라고 한 것보다 물러선 느낌이다. 그는 정수장학회에 대해서도 “저보고 문제를 해결하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고 했다.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라고 표현한 것보다는 부드러워 보인다. 그의 태도가 여전히 역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도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은 해법의 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언론의 사유화야말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공적이기 때문이다.
김광원칼럼 (미디어오늘 201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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