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한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그 한 사람이 힘을 가졌다 해서 나머지 모든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듯 모든 사람이 그 한 사람을 침묵하게 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영국의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이 그의 저서 ‘자유론’(1859년 출간)에서 강조한 말이다. 그는 19세기 중반에 여성의 참정권을 옹호하고 노예제도를 공공연히 비판했다. 그의 자유에 실린 무게는 민주주의보다 더 무겁다. 그만큼 자유는 민주주의의 소중한 요소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핵심은 인간의 기본권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 19조는 이를 포괄적인 ‘양심의 자유’로 보장하고 있다.
21세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사상의 자유는 더욱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당위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과거의 비극이 크기에 더욱 그렇다. 현재의 헌법정신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헌법은 전문에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강조한다. 헌법은 이어 대통령에게 평화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정신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얼마나 훼손되고 왜곡됐는지 국제인권단체들의 보고서만으로도 넘친다. 유엔인권위원회와 국제사면위(AI)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경고해왔다. 얼마 전에는 국제사면위가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한국 정부의 인터넷 감시 및 통제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냈다. 장난삼아 북한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 ‘김정일 만세’라고 올린 박정근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는 블랙코미디 같은 사실까지 지적했다.
이번에는 ‘미래의 권력’으로 떠오르는 박근혜 의원과 새누리당이 함께 제2의 블랙코미디에 출연한 듯하다. 새누리당이야 한나라당의 이름만 바꾼 것이니 그렇다 쳐도 박의원이 앞장서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새누리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의원이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향해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일갈한 것이다. 지난 1일 국회의 의원총회가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다. 거기까지 시비를 걸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부정과 뒤이은 폭력사태가 일으킨 파장이 만만치 않고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의원의 내세운 속내 이유다. 그는 “국회라는 곳이 국가의 안위를 다루는 곳이다.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또 국민들도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퇴이유가 ‘경선부정’이 아닌 ‘사상문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이들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국회차원에서 제명을 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박 의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통합당의 책임을 함께 들고 나왔다. 그는 “지금 국민들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크게 걱정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무엇보다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서는 민주당도 크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말하기 보다는 말 안하기로 자신을 표현해온 박의원의 행보로서는 뜻밖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 정치적 역점을 두겠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대선국면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이명박대통령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 ‘종북세력’을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그것도 전국민을 상대로 한 라디오 연설에서 “북한의 주장도 문제지만····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박의원이 짐짓 ‘종북세력’을 지칭하지 않았지만 그 여파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박근혜당이 된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의 당원명부까지 탈취한 검찰 등 공권력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이러한 여론조성의 일등공신은 물론 보수언론이다. 통합진보당의 당내갈등을 종북논란으로 몰아가 결국 국가안보와 국가관의 문제로 확대하는 틀짓기의 수법이다. 이를 통해 보수세력을 결집하고 민간인사찰이나 방송파업 등 보수정권 재창출의 걸림돌을 덮자는 전략일 수 있다.
특히 박의원의 국가관 운운은 섬뜩한 측면이 없지 않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조차 “종북으로 제명을 논하면 마녀사냥이지만 선거부정 문제는 제명 요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박의원에게 이러한 논리전개는 복잡하고 어려울지 모른다. 주춤거리는 검찰의 자세도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박의원에게 민주주의는 1970년대의 국가주의보다 하위개념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한계’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김광원칼럼 (내일신문 20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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