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히기는 상대를 누르거나 조르거나 꺾거나 비틀어서 제압하는 방법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벌이고 있는 ‘광폭행보’를 보노라면 그런 굳히기가 떠오른다. 그가 지난 8월 20일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국립 현충원을 찾았다. 박정희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봉하 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휘호 여사도 찾았다. 내친 김에 전태일 재단까지 들렀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며 민생을 논의했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20대 젊은이들과 취업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종교계 지도자들을 차례로 면담했다. 그동안 서먹했던 불교계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만나 주목되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행보 못지않은 모양새다.
문제는 박근혜식 굳히기의 진정성이다. 그가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국민 대통합’을 강조한 뒤 벌이는 행보를 두고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우격다짐 식의 무늬만 통합이라는 지적이다. 내일신문의 9월 정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가 이를 말한다. 박 후보의 광폭행보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그리 탐탁하지 않다. 긍정적이라는 대답이 45.3%인데 반해 부정적인 반응은 50.8%에 이른다. 특히 언론이 박 후보의 행보에 보인 지대한 관심을 고려한다면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진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흥행이라는 말이 쑥스러울 정도다. 국민경선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경선을 거듭할수록 동력을 잃어가는 표정이다. 감동의 경선은커녕 갈등과 분란의 경선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노(노무현) 비노 논란은 갈수록 태산이다. 제주경선부터 나온 모바일투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경선자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경선문제는 여러 갈래다. 문제의 출발은 경선관리에서 출발됐다. 첫 경선이 이루어졌던 제주경선의 결과가 일부 후보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모바일 투표 관리에 대한 의혹으로 발전한 것이다. 재검결과 투표결과에 영향을 끼칠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당과 지도부에 대한 경선관리 책임론과 더불어 지도부 퇴진론으로 이어졌다.
경선현장의 분위기는 폭력적 상황을 보이기도 했다. 경선이 거듭될수록 후보 간의 감정대립이 심해지는 양상이다. 각 후보들의 격렬한 토론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지지자들 간의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선 초반 고함으로 시작된 경선현장이 몸싸움과 물병던지기, 심지어는 신발 던지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경선과정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문재인 후보와 비문재인 후보들 간의 대립구도는 경선 중반에 들어서며 도를 넘었다. 문 후보를 향해 ‘패거리 정치’ ‘패권주의’라는 원색적 비난이 나오는가 하면 모바일 투표를 가리켜 ‘정체불명의 모바일세력’이라는 음모적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래서야 누가 대선후보로 결정되든 큰 상처를 안을 수밖에 없다. 남은 경선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정작 안철수 교수는 여전히 대선출마 여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으로 이미 정당정치의 밖에서 대선후보의 반열에 오른지 1년이 되어간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기존의 낡은 정치체제에 실망한 국민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그의 개인적 삶의 궤적은 특별한 공명을 일으킨 주요한 배경이다. 의사로부터 기업활동을 거쳐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는 우리 사회가 갈망했던 바를 스스로 행함으로써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지난 7월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후 다시 집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책 내용은 대담형식으로, 사회전반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다. 그의 책은 나오자마자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그의 책 내용에 관한 평가 역시 분분하지만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전반적인 과제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체제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 등 그야말로 그의 ‘상식’에 기초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문제는 그가 아직 ‘안철수의 생각’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의 대선출마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안철수의 행동’을 기다리다 못해 지친 듯하다. 이제 대선 100여일을 남기고 있다. 기존의 정당정치는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떠오른다. ‘안철수의 행동’이 국민의 생각을 어디로 이끌어갈지 기대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김광원칼럼(내일신문 201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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