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칼럼] 대통령을 욕할 수 없는 나라

배우이자 방송인 김여진씨는 ‘대통령을 욕할 수 있는 나라’를 희망했다. 그래서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후보를 지지하는 유세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는 연기자들, 기자들, 코미디언들, 개그맨들이 정부 욕 좀 해도 됐다. 많이 했다. 그렇다고 잘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권교체 안 되면 애만 키워야겠구나, 이런 두려움이 들었다”며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한파 속의 광화문 거리에서 “대통령을 욕할 수 있는 나라 만들어 달라. 욕 좀 한다고 해서 먹고 살 길 끊기고, 쫓겨날 일 없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불과 한달 전의 얘기다. 그 얘기가 잊히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최근 문재인 캠프와 연관됐다는 이유로 한 방송사로부터 출연취소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김 씨는 트위터를 통해 “각 방송사 윗분들, 문재인 캠프에 연관 있었던 사람들 출연금지 방침 같은 건 좀 제대로 공유를 하시던가요. 작가나 PD는 섭외를 하고, 하겠다고 대답하고 나서, 다시 ‘죄송합니다. 안 된대요’ 이런 말 듣게 해야겠습니까? 구질구질하게···”라고 글을 올렸다.



이명박 정부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졌던 일들이라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얘기는 이제 신물이 날 정도다. 지난 5년간 YTN KBS MBC 연합뉴스 등 주요 방송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그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또 이에 반대한 언론인 19명을 해직시키는 등 450여 명에 대한 징계를 강행했다. 이러한 방송사들이라면 김여진씨 등 특정 인사들에 대한 출연봉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흐름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시각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을 앞세우고 있다. 그런 박 당선인의 첫인사 중 하나가 윤창중 대변인이다. 박 당선인의 언론관에 대한 구체적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윤 대변인의 부적격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초점은 윤 대변인에 대한 인사논란보다 박 당선인 인사의 가이드라인이 보여주는 의미이다. 이는 이명박정부를 훨씬 뛰어넘는 ‘보도지침’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의 활동이 더해갈수록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윤창중 대변인이 기자들 앞에 들고 나타난 인수위 밀봉 인사봉투에서부터 박 당선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인사권에 대한 자신의 배타적 권한을 윤 대변인과 밀봉 봉투를 통해 국민에게 확실하게 내보인 셈이다. 국민의 알권리는 뒷전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왕조시대 임금의 교지가 거론되는 배경이다. 인사 대상자들에게 이러한 메시지가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하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박 당선인의 인수위원들에 대한 함구령은 정부부처 업무보고의 브리핑 봉쇄로 이어졌다. 인수위가 마치 비밀결사 조직처럼 보일 정도다. 인수위가 출범하는 첫날 전체회의부터 비밀주의는 예고됐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관계법령 운운이 그것이다. 그는 인수위 활동의 대외공표는 대변인 담당으로 “이런 사항이 준수되지 않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수위 활동과 관련, 대변인의 발언만을 받아쓰는 것이 마치 당연한 언론의 역할로 치부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인수위의 철저한 보안이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혼선은 바로 그 보안 때문에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고하기 전에는 업무보고 내용을 일체 브리핑하지 않겠다던 인수위가 태도를 바꿔 내용 일부를 공개한 것도 보안우선에서 비롯된 혼란이다.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의 최대석 인수위원 사퇴를 둘러싼 논란도 철통보안 때문이 빚어지고 있다.



박근혜 시대가 요구하는 언론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측이 사전협의를 거쳐 결정했다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는 박 당선인의 언론관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후보자의 이런 저런 자격시비보다는 헌법재판관 시절 ‘미네르바 사건’에 내린 합헌결정이 그 대표적 예다.



이 사건은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표적 탄압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9년 1월 검찰은 박대성씨를 체포했다. 그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허위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헌법재판소는 그를 구속한 법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위헌판단을 내렸으나 이 후보자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며 합헌을 주장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박 당선인의 언론에 대한 시각은 보다 명확해진다. 방송사들의 김여진 씨 방송출연 금지조치가 결코 예삿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대통령을 욕할 수 있는 나라’를 희망하는 그의 목소리가 잦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대통령을 욕할 수 없는 나라’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인가. 


김광원 칼럼 (미디어오늘 2013.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