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와 쟁점/칼럼/기고

한중일 갈등보도, “함께 멀리 갈 생각해야”


  어찌 보면 우연의 연속이었다. 신호를 놓친 운전사가 브레이크를 급히 밟았고 황태자 부부가 탄 차는 열 아홉살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의 일행 바로 옆에 멈췄다. 오전에 자신이 속한 테러조직 검은손이 황태자 일행에 던진 폭탄이 빗나간 낭패감에 고개를 숙이고 배회하던 프린치프에게 기회는 환각처럼 다가왔다. 머뭇거리며 빼든 권총이었지만 한발은 황태자는 목에, 다른 한 발은 황태자비의 배에 명중했고, 둘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1차 세계대전의 불길을 당긴 이 사건은 당시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발흥한 슬라브 민족주의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가진 적개심이 발단이었다. 완전한 독립국가를 염원했으나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의 영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을 병합한 게 불씨였다. 그렇지만 국제 정치적으로 이 사건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범 게르만주의와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범 슬라브주의가 발칸에서 벌인 세력 다툼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게다가 거의 전 유럽이 유례없는 참화에 휘말려 들어간 데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열강간 세력 갈등이 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7년에서 시계를 100년 뒤로 돌려보자.  2012년 늦여름을 달군 중-일간의 댜오이 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은 해를 거듭하며 덧이 나더니 2017년 여름에는 두 강대국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경제력에서 미국의 턱 밑까지 따라붙은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일본의 댜오이다오 실효지배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해군력으로 인근 수역을 봉쇄했다. 양국이 서로 대사를 소환한 직후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이 해상봉쇄는 2012년 취역한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주축이 됐다.





  주목할 것은 일본이 취한 태도였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 만들어진 평화헌법 아래서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군사적 호전성을 억눌러오던 일본의 대응이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일본은 중국이 해상봉쇄에 즉각 잠수함 전단을 파견해 군사적 대치에 들어갔다. 최근 일본이 앞선 기술력을 총 동원해 소형 핵탄두와 정밀 타격 미사일 개발을 끝내고 실전 배치 중이란 소문이 돌았다. 일본의 군사적 자신감은 이런데서 나온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 해도 일본은 믿는 뒷배가 있었다. 사실 중국이 일본의 잠수함 보다 더 껄끄럽게 생각하는 무력은 인근 오키나와에 배치된 미 공군 스텔스기 전단과 남중국해에서 함재기 70여대씩을 싣고 급파된 니미츠급 항공모함 2척이었다. 미국은 동중국해 이외에도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사이의 영토분쟁을 파고 들어 중국 포위라인을 조여가고 있던 차였다. 독도 문제로 일본과 사이가 많이 틀어진 한국은 북한과 미국, 중국의 눈치를 동시에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의 끈이 날로 팽팽해져 어떤 불씨라도 떨어지면 사태가 어디로 번질 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2017년 상황은 가상 시나리오지만 전혀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동아시아가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화성이 높은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제적 패권을 겨루는 강력한 세력과 세력이 부딪치는 전선이 이 지역에 그어지고 있어서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중국의 굴기’(屈起)가 이 지역의 세력균형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G2 반열에 오른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가자 쇠락에 초조해진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권 아래 미국 군사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왔다미국은 일본을 무역협정을 빙자한 안보동맹이라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끌어들이는 등 동서로는 일본에서 인도까지, 남북으로는 뉴질랜드와 호주를 포괄하는 경제-군사적 동맹으로 중국 포위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포위가 두렵긴 하지만 완급을 조절하며 이 지역에서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역량을 꾸준히 쌓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동아시아는 글로벌 패권을 넘겨받느냐 지키느냐를 두고 대륙판과 해양판이 만나 에너지를 응축해 가는 지진대와 같은 곳으로 변했다.


  올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작은 섬들을 놓고 벌인 한바탕 드잡이는 국제정세 변화가 이 지역에 어떤 소용돌이를 몰고 올 지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았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 분쟁, 일본과 중국의 댜오이다오 분쟁, 이어도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신경전에서 확연히 드러난 것은 이 지역 민족 감정의 인화성으로 영토나 과거사 같은 계기가 주어지면 바로 불이 붙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이후 중국의 분노한 시위대는 일본인이 투자한 기업이나 점포에 불을 질렀다. 일본 브랜드 자동차 판매와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도 급감했다. 양국 관계는 1972년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일본 왕 사과 요구 뒤 한일간의 맞대응이 수위를 높여가며 양국민간의 감정도 비등점을 향해 달렸다. 이 지역의 오랜 묵계인 정경분리 원칙도 한층 금이 가 한-일간 통화스와프가 연장 없이 종료됐고, 중국은 일본 상품에 대한 통관검사를 강화하는 등 경제보복 조처를 들고 나왔다.


  한-- 3국이 과거사나 영토문제로 대립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지난 10여 년 사이에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역사적 패권대립의 전선이 그어진 상태에서 민족 감정이 갈등을 한없이 고조하는 것은 휘발유통 옆에서 폭죽놀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국가와 국민들의 갈등을 조절하고 합리적 해법을 제시할 과제가 3국의 지식인 사회에 주어졌다. 특히 올바른 정보와 논평을 제공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언론의 역할과 책임은 어느 때 보다 커졌다. 하지만 이번 영토분쟁에서 3국의 언론의 보도는 종래의 관행을 되풀이하는 것이었고, 큰 틀에서 새로운 상황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고 전략을 실천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통상 영토나 과거사 문제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두 가지 성향을 띠게 된다. 하나는 민족주의적 성향과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것이다. 이는 언론이 자기 나라의 이해와 이익을 지키는 보도를 해 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언론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공정한 관찰자 역할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민족적이고 애국적인 보도는 그간의 과거사 문제나 영토분쟁에 과정에서 한--일 언론이 일관되게 보여온 보도태도인 것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다(서라미-정재민  한중일 3국 신문의 8.15 보도 비교분석’, 2007; 김영욱, 김성해, 이토 요이치, 장궈량 미디어에 나타난 이웃: 한중일 언론의 상호 국가보도. 2006 ). 이번에도 3국의 언론은 적반하장’, ‘몰염치’(한국 언론), “예의가 없다”(일본 언론), “중국은 상대를 1000명 죽일 수 있다면 800명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중국 언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감정적 표현을 거르지 않고 전달하며 민족감정에 불을 지폈다.


  다른 하나의 보도 태도는 언론이 한 발 떨어져서 이런 민족감정의 국내정치 이용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실 이번 분쟁이 악화된 계기는 국민정서를 활용하려는 3국 지도자의 정치적 의도가 작용한 탓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를 전격 방문한 것은 그의 대일 외교 기조와 어긋나는 것이어서 임기 말 지도력 누수를 차단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란 언론의 지적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센카쿠섬을 사들이겠다고 공언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선거를 의식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데 대해 언론의 우려가 제기됐다.


  2010년 희토류 대일 수출 규제로 일본에 구속된 어선 선장을 구출해 내 자국민에게 환호를 받은 중국 지도자들은 이번에도 무력시위를 포함한 강경몰이로 분쟁을 증폭시켰다. 이런 데 대해 통제를 받는 중국 언론은 몰라도 중국 지식인 사회는 수군거리고 있다. 10월 중순 한국을 방문한 국제정치학자 딩쉐량 홍콩 과기대 교수는 필자에게 중국 지도자들이 내부감정을 활용하는데 능숙하다이런 것들은 사회통제가 목적인 국내정치용이라고 밝혔다.


  민족감정을 부풀리는데 앞장서 건, 이런 것의 국내정치 이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든 언론에게 부족한 것은 이미 세계 3대 경제 축으로 성장한 동아시아가 어떻게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3국이 각기 자기 나라에서만 통하고 맴도는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발전된 관계를 만들어갈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한-- 3국에 민족감정에 휘둘리는 국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10월 중순 서울에서 만난 이즈미야 와타루 일본 산쿄타임즈 편집장은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지만 사실 일본국민의 80%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에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한국과 중국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냉철하게 생각하는 지식인들도 있다.. 9월 말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브로 등 일본 지식인 800명이 과거 침략을 진지하게 반성하자며 자성의 목소리를 낸 데 이어 중국의 지식인 460여명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언론과 정치인의 행태에 대해 반성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일 언론이 이런 합리적인 목소리를 키워가지 못하는 것은 아시아의 3국이 서로 협력해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뚜렷한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시아의 공동발전에 대한 모델이나 담론이 이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론도 그 중 하나이다. --일을 중심으로 해 아세안 등 역내 국가들이 힘을 합쳐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어 다가오는 아시아 시대를 준비하자는 논의는 2년 전만 해도 왕성했었다.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동아시아가 우애박애의 정신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큰 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동양의 전통적인 윤리와 가치가 경제위기, 문명위기를 겪는 서구세계에 새롭고 보편적인 규범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 된 것이다.


  비록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목소리는 사그러들고 있지만 아시아가 지정학적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원심력으로 갈지 구심력으로 갈 지는 이 지역에 사는 15억 인구의 명운을 조만간 가를 것이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놔둘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3국이 갈등의 틈을 벌리고 덧내기 보다는 상생과 협력의 경험을 넓혀가야 하는 것이다. 한중일은 이미 경제적으로 뗄래야 땔 수 없이 밀접한 의존관계에 있다


  동아시아가 큰 전쟁을 두 번 치르고 정치, 경제 통합의 길을 모색한 유럽처럼 협력과 연대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역사적인 갈등을 정리하고, 상호 이해를 넓혀 미래로 나가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일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목소리를 지금 보다 크게 담아내야 한다. 상생과 협력의 보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3국간 언론인 교류와 토론이 지금 보다 활발해 져야 한다.


  아울러 아시아가 민족감정을 다스리고 정치-경제적 고동체를 지향한다면 문화적 측면에서 공동체 의식을 높여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유럽이 정치-경제적 통합에 앞서 문화통합을 위해 노력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문화가 통합의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유럽의 정체성유럽적 의미를 규정하는데 힘썼다. 이의 핵심으로 지목한 것이 영상매체였고 여기서 나온 것이 국경없는 텔레비전 강령’(Television without Frontier) 이었다. 역사적으로 숙적인 독일과 프랑스는 이런 정신 아래 반반씩 지분을 내 합작 방송사 아르떼(Arte)를 만들어 1992년부터 지금까지 활발히 전파를 내보내고 있다.


  동아시아의 3국 중국, 일본, 한국은 경제규모가 각각 세계 2, 3, 12위의 강국이자 군사, 기술,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다. 이런 나라가 언제까지 영토, 과거사를 놓고 장군 멍군하며 공생발전의 기회를 날릴 수는 없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과거의 인식을 정리해 내는 언론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다.

 

(신문과 방송 원고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현상을 뒤집어보면 다른 관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