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9년 5월부터 두 달간 유럽 출장을 갔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방문하여 업무를 하면서 유럽 사람들이 사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 중의 하나가 잘 가꾸어진 농촌과 여유 있게 사는 농민들이었다.도시인들과 비교하여도 소득에서 뒤지지 않고 현대식 시설이지만 오래된 문화유적을 잘보전하여 사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농민들이 자못 부러웠다. 필자의 고향은 충남 당진이다.
유럽의 농민들이 풍족하고 여유있게 사는 비결은 바로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 때문이다. EU는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인데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폴란드, 체코,헝가리 등 27개 나라가 회원국이다. 이들 회원국은 국가별로 실행하던 농민지원책을 EU차원에서 단일정책으로 바꿨다. 유럽연합의 단일정책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동농업정책이다. 1962년부터 시행된 이 정책은 초기에는 농산물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주는 가격지원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격지원책은 제3세계 빈국의 주요 수출품인농산물의 EU로의 수입을 저해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시작되면서 EU는 농산물지원책을 농민 소득 보전책으로 변경했다. EU 27개 회원국의 인구는 약 5억 명, 이 가운데 농민의 비율은 5% 남짓하다. 이런 농민을 위하여 EU 예산의 40% 정도가 지출된다. 너무 농민 편향적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미국이나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들의 지속적인 비판을 받았지만 EU는 공동농업정책을 아직도 운영 중이다. 이를 단순한 농민지원책이 아니라 복지로 여긴다. 2차 대전 후 서독 등 서유럽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런 소득 격차를 줄이고 식량안보를 확보할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유럽 차원의 공동농업정책이 성사되었다.
우리는 EU와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크게 다르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농촌 주민들이 대규모로 도시로 이주했고 이들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일꾼이 되었다. 1970년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대구 출신의 전태일 열사나 서울 평화시장과 구로공단의 시다들, 바로 이들은 시골 이웃집 아저씨나 친척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인 1970년대 우리에게도 새마을 운동이 있어 도시와 농촌 간의소득격차를 좁히려 시도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은 일부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당시 독재 정부가 농민을 대상으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 동원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많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민생,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웠다. 경제위기에 서민들, 특히 취약계층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박 당선자의 정책 공약 중 농어촌 분야는 농어민 소득 향상, 농어촌 복지 확대, 농업 경쟁력 확보가 골자다. 생명산업이자 안보산업인 농업을 경시하지 않고 고정 직불금을 현재 ha당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런 점은 언론 등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5000만 인구 가운데 농민이 6%(296만 명)에 불과하고 다른 시급한 사안이 많아서일 터이지만 그래도 농민과 농촌이 주목을 받지 못한점은 아쉽다. 도시민의 상당수는 고향이 시골이다. 많은 도시인에게 농촌은 영원한 마음의고향이다.
때마침 많은 행정경험을 지닌 최영조 후보가 7대 경산시장으로 취임했다. 도농복합도시인 경산시의 특징을 잘 알고 있는 최영조 신임 시장이 경산시의 특징과 장점을 잘 살려 행정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지자체는 지역 주민의 삶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농민 지원책이 잘 공조되고 협력하여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경산신문 20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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