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유럽은 감기에, 아시아는 독감에 걸린다’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미국의 경제정책이 각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때 유행한 말이다. 그런데 이제 중국이 미국을 제쳐두고 이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 하반기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자 중국은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쳐 위기의 조속한 극복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중국 없이 세계 경제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 점점 무의미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어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너무 커서 그렇지만 중국이라는 ‘나비’가 작은 날갯짓이라도 하면 이 날갯짓이 다른 나라에서는 태풍이 된다. 그렇다면 중국 나비를 잡으려 하지 말고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해 우리 경제는 겨우 2% 성장에 그쳤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최저 성장이다. 우리 경제의 무역 의존도는 90%에 육박한다. 수출과 수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 정도가 되기 때문에 수출이 되지 않으면 기업이나 가계가 다 어렵게 된다. 대학생들의 취업이 세계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무역구조에서 중국은 우리에겐 가장 큰 시장이다.
2012년 우리 무역은 1조 677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이(5482억 달러) 수입(5195억 달러)보다 많아 286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우리 수출의 24.5%는 중국으로 나갔는데 중국에서 수입을 적게 하여 이곳에서 벌어들인 돈이 약 514억 달러다. 반면에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느라, 그리고 일본에선 정밀 기계 부품을 수입하기 위해 막대한 적자를 내야만 했다. 중국이라는 대규모 시장이 없으면 우리 경제는 그다지 돈을 벌만한 곳이 많지 않다. 그런데 중국은 비단 경제에서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아니다.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참전으로 중국은 북한의 혈맹이 되었다. 1990년대부터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빠진 북한이 생존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도움이 크다.
현재 우리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비교적 느긋하지만 중국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한중 FTA를 체결하고자 한다. 미국은 외교 및 국방정책에서 아시아에 좀 더 중점을 두는 ‘아시아 귀환’을 계속하면서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협상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자국 포위전략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일본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역사를 부인하고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는 것도 중국의 새 지도부에게는 달갑지 않다. 이렇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의 역사부정에 한 목소리를 내고 한미동맹의 한 축인 우리와 FTA를 체결하여 경제를 발판으로 정치에서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더 확대하려 한다.
우리는 이런 호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중국과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등 각 분야에서도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를 확대하여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 내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필요하다. 그렇다고 다급한 중국에 밀려 중국과 FTA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
FTA라는 것을 무기로 중국으로부터 최대한 얻어내야 한다. FTA 체결이 목표가 아니라 국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FTA가 필요하다. 그간 체결된 유럽연합(EU) 및 미국과의 FTA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중요한 이해 당사자-농민 등-들과 충분한 협의나 상의도 없이 시한 맞추기 식으로 FTA를 체결하여 사회적 분열을 조장했던 점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고 FTA 체결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또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외교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사회적 분열을 줄이면서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FTA가 되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경산신문 20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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