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전망 l 리쇼어링과 중소기업 육성
GE·애플·구글·지엠·오티스
비용 증가·거리 불이익 등 이유
‘해외이전→본국행’ 추세 변화
자국서 기술 키우고 수출 다변화
독일은 흔들림 없는 ‘중기 강
임금이 싼 곳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공장과 협력업체를 옮기는 것은 경제 세계화의 대표적 현상이었다. 덕분에 중국과 인도가 신흥국 반열에 올라섰고, 러시아와 브라질을 합쳐 이른바 ‘브릭스’(BRICs) 4개 나라의 중산층 인구는 8억명으로 주요 7개국(G7) 전체 인구보다 많아졌다.
이는 동시에 선진국의 일자리 감소를 뜻했다. 청년들이 취직할 곳이 없고, 다니던 직장에서 수시로 정리해고됐다. 언제든 외국으로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자본의 목소리는 커졌다. 그만큼 노동은 설 자리가 좁아졌고, 빈부격차는 벌어졌다. 중국
을 지척에 둔 한국도 1990년대 이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런데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런 추세에 변화가 오고 있다. 생산비용이 싼 곳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이 아니라 다시 들어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이나, 선진국이든 어디든 시장이 큰 곳에 공장을 세우는 ‘온쇼어링’(onshoring)이 늘고 있다. 또 부품이나 서비스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아웃소싱(outsourcing) 대신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인소싱’(insourcing)이 새롭게 유행한다.
미국이 이런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과 인도 등에서 ‘유턴’한 미국 기업은 100여곳에 이른다. 아웃소싱 경영의 원조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중국에 있던 대형 가전 공장을 미국 켄터키주로 옮겼다. 포드자동차는 멕시코의 중형트럭 라인을 오하이오주로 들고 들어왔다. 이밖에 애플, 구글, 지엠(GM), 오티스 같은 큰 회사들이 신흥국에 있던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거나 생산기지로 미국을 택했다.
아이비엠(IBM)의 싱크패드 노트북 사업을 인수한 중국 회사 레노버는 이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개인용컴퓨터 공장을 가동한다. 미국에서 개인용컴퓨터 생산은 지난 30년간 계속 줄어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터여서 레노버의 공장 설립은 이례적이다. 중국 기업이지만 시장이 있는 미국에서 생산을 하려는 ‘온쇼어링’ 전략이다.
중국이나 동남아로 대거 빠져나가 ‘산업 공동화’ 우려마저 일었던 일본도 기업의 ‘리쇼어링’이 엔화 약세를 타고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말 “일본 제조업체가 일본에 공장을 새로 짓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자업체인 엔이시(NEC)는 올해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 공장에서 총 160만대의 노트북을 생산할 예정인데, 지난해까지 일본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고 중국과 대만 공장의 생산을 늘리던 것과는 달라진 것이다. 후지제록스, 에프디케이(FDK) 같은 전자기기 업체와 닛산 등 자동차 업체도 중국 생산량을 줄이고 일본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이런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 이유를 지난달 19일 발행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흥국의 저비용 효과가 감소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지난 10년간 매해 임금이 10~20% 오른 반면 미국이나 유럽은 거의 정체했다. 그래서 물류비용 등을 고려한 생산비용이 중국은 이미 미국내 생산과 비슷해졌고, 멕시코와 인도 역시 80% 이상이어서 옛날과 달리 큰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여전히 저임금이지만 중국에 비할 때 규모나 효율성, 공급망 등에서 많이 뒤처져 있다.
둘째, 기업들이 ‘거리’가 주는 불이익이 크다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핵심인 연구·개발(R&D)은 자국에서 하고 생산은 임금이 싼 곳에서 한다는 걸 정석으로 알았는데, 생산 현장이 아이디어와 혁신의 원천임을 깨달은 것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유명 의류브랜드 자라(Zara)는 스페인이나 근처 포르투갈, 모로코 등에서만 생산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 비록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은 더 들지만 변화하는 소비자 취향을 빨리 제품에 반영함으로써, 바겐세일 하지 않고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비결이 됐다.
셋째, 공장 해외 이전이나 아웃소싱이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웃소싱 과정에서 지식재산의 관리가 어렵고, 협력업체가 기술을 익혀 나중에 버거운 경쟁상대로 크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일본 전자회사의 협력업체로 컸지만 지금은 일본 업체를 능가하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또 콜센터 같은 서비스도 인도 등 영어권으로 이전하는 것이 한때 큰 유행이었으나, 소통의 품질에 대해 고객의 불만이 늘어나면서 이를 다시 본사로 이전하는 곳도 늘고 있다.
물론 비용 절감을 위한 공장의 해외이전이나 아웃소싱이 금방 사라질 까닭은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당연시되는 추세는 꺾였고, 기업들은 변화된 환경에 맞춰 좀더 다양한 방식의 생산을 추구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런 추세 변화는 중소기업 육성을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삼는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기업들은 해외 이전과 아웃소싱에 매달렸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독일을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국으로 이끈 저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히든챔피언’ 1600개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나라의 기업이 신흥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길 때 자국에서 기술력을 키우고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방향은 기술력에 바탕을 둔 고부가가치 제품을 우리 땅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 201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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