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높으신 분을 만나볼 기회가 별로 없는 처지라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의 진정한 실체를 알 도리는 없다. 언론에 드러난 것처럼 제 잇속만 챙기는 소인배일 수도 있고 반대 세력의 모함에 의한 희생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낙엽이 하나 떨어지는 것을 통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안다는 일엽지추(一葉知秋)란 말처럼 이번 일이 TK(대구경북) 리더십의 미래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박정희 정권 이후 TK 인사들은 대한민국의 기득권으로 자리를 잡았다. 박근혜 당선자를 포함해 4명의 대통령이 나왔고 이효상, 채문식, 김수한, 박준규, 신현확, 이만섭, 장택상 등이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TK 인맥은 행정부, 군대,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와 교육계 등 각 분야에 걸쳐 있다.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 헌법재판관, 고등법원장, 지검장, 중수부장 등 사법부와 검찰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법조인도 많다.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더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는 TK 리더십은 그러나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다.
공평하지 못한 게임을 통한 권력화. TK 리더십의 특징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TK 인사는 지역주의와 학연의 특혜를 누렸다. 가령, 이동흡 재판관을 비롯해 이한구 원내대표, 권재진 법무장관, 유승민 국회의원, 이현동 국세청장, 권태신 전 총리실장, 이장영 금융연수원장 등은 모두 경북고 동문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지금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강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외부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TK 엘리트는 또한 권력기관을 독식하면서 자기편에게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MB 정부의 경우 김경한 법무부 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김종태 기무사령관, 김종창 금감원장, 성용락 감사원 사무총장,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 노환균 대검 공안부장등은 모두 TK 출신이었다. 김경한 장관을 대신한 권재진을 비롯해 주상용 청장 대신 자리를 채운 김용판도 모두 동향 출신이다. TK 리더십은 공인으로서의 책임과 도덕성이라는 기준에서도 낙제점이다.
강경식, 강만수, 김기환, 김인호, 김만제, 사공일 등은 1997년의 외환위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당시 정부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 했거나 국책연구원 등에서 위기를 방관했다. 자본시장을 무리하게 개방하는데 앞장섰고 미국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민간인 사찰 사건을 은폐하고 무리한 기소를 통해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받게 만든 권재진, 최재경, 노환균, 최교일 검사도 TK 인사다.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여론 조작을 시도한 것으로 비판받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역시 대구 출신이다. 권력형 비리로 수감 중이거나 최근 풀려난 강희락 청장, 최시중 위원장, 김두우 홍보수석 등도 예외가 아니다. 책임을 진 인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2001년 9.11 사태를 맞아 미국은 리더십의 위기를 느꼈다. 부시 행정부는 당시 공격을‘미국에 대한 질투 또는 미국식 삶에 대한 거부’라고 규정했고 리더십을 지키기 위해 이라크 침공을 서둘렀다. 미국 정부의 명분 없는 전쟁은 전 세계 6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3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미국의 리더십 또한 회복 불능의 상태로 추락했다.
TK 엘리트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당시의 미국과 유사하다. 책임과 윤리를 회복함으로써 지도력을 연장할 수도 있고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적대시함으로써 리더십의 붕괴를 촉진할 수도 있다. 집권당의 원내 대표가 동문 또는 동향이라는 이유로 자격 미달의 후배를 보호하고 국민을 되레 훈계하는 모습은 그래서 못내 불안하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고 덕(德)이 있어야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배울 것도 없고, 자기 잇속만 채우는 리더십의 종말은 항상 비참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 20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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