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인사난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래밭에서 찾아낸 진주”라고 말한 장관후보자가 자격미달이라는 여야의 질타를 받고 있다. 여야의원들의 질문에 “잘 모른다” “장관이 되면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대답, TV코미디의 소재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동안 이 정부의 장차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탈세, 부동산투기, 불법전입 등의 사례는 이미 식상할 정도가 됐다. 무기브로커 국방장관 후보자와 재벌이익을 대변하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나오는가 하면 미국신문 기고를 통해 한국사회를 비난한 장관 후보자도 있다. 그뿐인가. 5.16이 군사정변이라는 역사적 사실마저 외면하는 장관들이 줄을 이었다. 코미디 장관후보자가 나온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정작 놀랄 일은 청와대의 태도다. 박 대통령 자신이 문제점에 대한 성찰은커녕 국정에 대한 발목잡기라는 인식을 보여왔다. 며칠 전 인사낙마 사태와 관련, “대통령의 사과는 검토된 바 없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가 이어졌다. 그 하루 만인 3월30일 주말 오후에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초짜리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것도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두 문장이 전부였다.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인사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과인지 불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리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는 ‘사과 아닌 사과’라고 할 수 있다. 사과의 주체나 형식 그리고 내용에 이르기까지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증의 책임소재나 향후 문책의 여부조차 사과문에 들어가 있지 않다. 인사의 공공성이 무시된 결과다. 이러한 현상이 박 대통령의 임기 내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고질적 사태가 단순히 인사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이명박정부 시절 전범을 보였다. 권력의 사유화라는 지적은 그 한 자락에 불과하다. 그 다른 한 자락은 시장의 원리로 포장된 부(富)의 편재다. 더구나 권력과 부의 거래는 동전의 양면과 다름없는 게 현실이다. 권력과 부는 사회를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공공성이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를 화두로 내세워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그는 인사마저 ‘시립한 신하’들과 ‘재테크 달인’들로 채우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또 미디어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 중 하나로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새정부 출범 후 20여일을 허송하는 결기를 보였다. 결국 모든 뉴미디어 관련업무를 미래부로 이관하는데 성공했다. 방송정책에 관한 내용에 관해서는 기존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했으나 이는 현재 방통위의 구성상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이명박정부 시절 불법적으로 처리된 종편허가와 맥을 같이한다.
이는 한마디로 공론장의 구조변화를 위한 본격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SO(유선방송사업자)와 위성방송 및 IPTV 등 유료방송 플랫폼이 온통 미래부 관할로 넘어간다. 이는 대대적 규제완화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지상파 방송까지 대기업에 종속되는 결과를 빚을 공산이 크다. 이는 권력과 자본의 미디어산업 지배이자 방송장악의 결정판에 다름 아니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와 같은 현상을 ‘공론장의 재봉건화’로 규정한다. 그는 저서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공론장의 역사적 변화에 주목했다. 한마디로 공론장 역할의 약화에 따라 공공영역의 재봉건화가 이루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언론이야말로 이 공론장을 좌지우지하는 지렛대다. 그 공론장이 봉건화되고 있다면 그 사회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미디어산업으로 재편된 이념시장의 독점이야말로 박근혜정부의 노림수라고 할 만하다. 권력자와 대기업만이 이 이념시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그들의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이다. 그들은 만사를 경제 살리기에 연동시킴으로써 정책우선 순위를 바꿀 수 있고, 각종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국민을 침묵케 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퇴행이자 행정부의 독주로 가는 길목이다. 입법부를 ‘통법부’로 격하시키고 사법부를 길들여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권력독점이 과거와 같은 강압적 방법은 아니다. 모든 것이 교묘하고 합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항상 여론을 앞세워 공론장의 질서를 강조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할 것임에 틀림없다. 조중동과 종편 등 거대 언론기업과 미디어산업 재편으로 태어날 괴물기업의 위험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까닭이다. 가장 위험하고 명백한 권력통합 중의 하나가 미디어분야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1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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