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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대구 시민이 보내는 상소문(上疏文)

출범 한달 된 박근혜정부 국민을 두려워해야

당태종의 ‘정관정요’에서 정부 올바르게 이끌어갈 지혜 찾아나가기를


디지털 시대에 웬 구닥다리 상소문이냐고 꾸짖을지 모르겠다. 상소문은 원래 신하 된 자나 지식인이 군주에게 올리는 간청의 글로 민주주의 시대에는 가당치 않다. 그렇지만 통치권의 행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군주와 오늘날 대통령이 반드시 다르지는 않다. 대통령이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국무총리, 장관, 공기업 감사, 수련원 원장 등 무려 2천개에 달한다. 대통령 자신이 군주가 된 것처럼 ‘훈계’하고 공직을 맡은 이들은 신하가 된 것처럼 ‘무한 영광’과 ‘벅찬 감동’을 읊조린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권좌에 오른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무지한 민초의 소망과는 달리 그간의 행적은 실망스럽고 위태롭다. 물론 언론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평가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지금 느끼는 실패의 예감이 편견이나 오해가 아니기 위해서는 믿을만한 근거도 필요하다. 그래서 ‘정관정요’란 책에 주목한다. 이 책은 중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당 태종 이세민과 신료들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지도자의 덕목, 군신의 관계, 국정 운영 철학 등을 두루 담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보듯 박 대통령은 깐깐한 사감처럼 모든 것을 지시하고 관료의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 태종은 이와 관련해 “지극히 세밀하면 많은 것을 의심한다. 일마다 모두 자신이 결단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을 수고롭게 하고 육신을 고생시킨다 하더라도 남김없이 다 도리에 합당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모든 일을 백관에게 위임해 헤아리게 하고 재상에게는 계책을 세우게 하고 정사에 있어서는 원만하게 처리하게 한 후에 비로소 상주하게 해 시행해야 한다. 어찌 하루에 그 많고 중요한 정무를 혼자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 결단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충고도 했다.


말 잘 듣는 관료만 등용하고, 제 편만 중용하며,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멀리한다는 것도 문제다. 당 태종이 중용했던 방현령, 우세남 등은 한때 적군이었다. 군주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항상 낯빛을 부드럽게 했던 그는 “만약 군주가 행하는 바가 정당하지 못하고 신하 또한 올바르게 간하여 고치는 일이 없으며, 구차하게도 아부하여 순종만 하고 군주가 하는 일 모두를 훌륭하다고 칭찬만 한다면… 나라의 위험과 멸망이 멀지 않다”고 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민초의 마음을 좌절시키고 성품보다는 능력만 중시하는 인사 스타일 역시 위험하다. 잘못된 인사정책에 대해 굳이 사과할 필요를 못 느끼는 박 대통령과 달리 당 태종은 “짐이 한 가지 일을 행하면 곧 천하가 보는 바가 되고, 한 마디의 말을 하면 곧 천하가 듣는 바가 된다. 덕이 있고 좋은 인재를 등용하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 모두에게 좋은 일을 권하게 된다. 잘못해 악인을 등용하면 좋지 않은 자가 다투어 나오게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또 “만약 그 선함을 알고 난 후에 이를 임용한다면 설사 이 사람이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단지 그 사람의 재주와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일 뿐 큰 해를 당하지는 않는다. 잘못해 악한 사람을 임용한다면 설사 재능이 있어 일을 잘 처리한다 하더라도 우환을 저지르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보국(CIA) 자문위원, 무기 중재상, 해외 비자금과 같은 흠결을 무시하고 인사를 강행했던 박 대통령과는 대비된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지금의 권좌에 올랐다. 본인의 능력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는 말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같이 “크게 근심할 때”에는 “정성을 다해 신하를 대우하지만 이미 뜻을 얻은 후에는 곧 욕정을 마음대로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백성이 원하는 것은 큰 일에 있는 것이 아니며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백성이다. 배를 띄우는 것도 배를 전복시키는 것도 물이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아야 할 이유가 많은 사람이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 20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