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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용의꼬리와 뱀의머리

"인생은 선택이 중요 대한민국, 용의 꼬리 선택 용인 미국의 방식만 쫓아 스스로 사고하는 법 잊어 뱀의 머리로 사는 법 배워야"

 

인생은 선택이다.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가를 고민하고, 잘못된 선택을 평생 후회하기도 한다. 국가공동체 역시 필연적으로 무수한 선택을 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선택함으로써 아시아의 맹주로 떠올랐고,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인해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과 무엇이 최선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별개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 중에서 전자를 택했다. 미국의 보호 덕분에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지 않는다. 미국의 후광으로 G20 의장국도 되고 한국인 UN 사무총장도 나왔다. 미국의 양보로 무역흑자를 실현했으며, 유학생 파견과 기술교류 등을 통해 눈부시게 성장했다. 주체사상을 앞세웠던 북한에 비해 대다수 국민은 훨씬 더 풍요롭고 자유롭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용의 꼬리로서 우리는 감히 용의 판단을 의심할 수 없었다. 미국이 보여주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미국의 적은 우리의 적이었고, 미국의 우방은 우리의 우방이었다. 그래서 전 세계가 반대하는 베트남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력에는 침묵했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두둔했다.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휴전협정을 어기고 한반도에 핵을 들여온 미국의 결정을 방관했다. 60만 군대의 통제권을 넘겼고 영토, 영공, 영해를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다. 중국과 북한의 합동군사 훈련은 용납하지 않으면서 항공모함과 전술핵으로 무장한 한미군사 훈련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북방한계선(NLL)은 미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포된 것으로, 휴전협정문에도 없고 당연히 분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괘념치 않는다. 한반도 위기 심화에 따른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당연히 침묵한다.


지난 5년간 국방비는 매년 20% 증가했다. 2013년 국방예산은 무려 34조원으로 정부 재정의 14.5%를 차지한다. 핵무기 사용을 비롯해 전쟁 개시에 대해 전혀 개입할 수 없으면서도 미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 중의 하나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이나 패권주의는 외면하면서 자칫 중국 등과 돌이킬 수 없는 충돌을 초래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 가입에 목을 맨다.


물론 ‘모든 게 북한 탓’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용의 꼬리로 안주했기 때문에 생긴 잘못된 낙관일 수 있다.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용이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다. 칠레, 파나마, 아르헨티나 등에서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불법 쿠데타로 전복했다. 예멘, 쿠웨이트, 사우디 등 왕정국가에 대한 미국의 후원도 잘 알려져 있다. 꼬리를 향한 용의 애정관계가 영원하지도 않고 자의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자신을 도와 준 미국의 침략으로 죽임을 당했다. 독일이 유럽연합을 주도하고 일본 역시 아시아공동체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 용의 꼬리가 갖는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병자호란은 망해 가는 명나라에 대한 잘못된 집착이 빚은 참사였다. 외세를 이용하고자 했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은 애초에 성공할 수 없었다. 일제 36년간 그토록 독립을 갈구했던 것도 우리 운명을 직접 개척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용의 꼬리가 주는 특혜로 인해 스스로 사고하는 것조차 중단해 버린 지금의 한국은 그래서 참담하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조선을 망친 것처럼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역시 위험하다. 머리가 완전히 예속되어 주체라는 것조차 망각하기 전에 뱀의 머리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 20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