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1980년대의 격동기에 태어난 이후 ‘민중의 애국가’로 불리기도 한다. 군부독재 타도와 노동운동, 그리고 민권운동 등의 현장에서 깃발역할을 해왔다. 이 노래는 그래서인지 노랫말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런 이유 때문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발발 33주년이 되어서도 수난을 당하고 있다.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 씨가 노랫말로 만들어 김종률 씨가 곡을 붙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사망한 시민군 대변인 신랑 윤상원과 그의 야학동지로 노동현장에서 숨진 신부 박기순의 1982년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굿이 되며 들불처럼 퍼지게 됐다.
이 노래는 5.18의 민주화 운동 회복과 함께 복권됐으나 이명박정부에서 또다시 퇴출의 액운을 맞는다. 국가기념일에 ‘불온한’ 민중가요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심지어 2010년 30주년 5.18 기념식 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흥겨운 경기민요 ‘방아타령’을 들려주기로 결정했다가 비판여론에 취소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스스로가 지난 4년간 5.18 기념식을 찾지 않았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정부 역시 5.18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도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관부처인 국가보훈처의 태도가 그렇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발언이 그 발단이다. 그는 얼마 전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33주년 기념행사에서 이 노래의 제창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며 “국가행사의 다른 기념곡들과는 달리 ‘임을 위한 행진곡’의 사용에 있어서는 많은 이견이 있다”고 토를 달았다. 많이 들어온 판박이 복지부동의 유형이다.
박 처장의 행적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육사 출신으로 2007년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는 강연에 열성이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시절인 2011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후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례적으로 유임됐다.
더욱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5.18 공식 기념곡에 대한 공모 추진이다. 국가보훈처는 현재 5.18 기념곡 제정 명목의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상태다. 광주 시민들은 물론 관련 단체들이 반대하는 기념곡 공모를 추진하려는 저의야말로 불온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2004년 열린 24주년 기념식 때 공식 기념곡이었다. 당시 국립 5.18 묘역에서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합창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보이는 동영상이 최근 인터넷을 달구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5.18 기념식에 참석,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가 약속한 국민대통합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5.18 기념곡 제창의 문제가 아니라 박 대통령 자신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5.18 묘역을 참배하고 성명을 통해 민주발전을 기원한 그의 다짐이 집권을 위한 쇼에 불과할 수는 없다. “호남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언약이 빈말이어서야 되겠는가.
국민대통합뿐 아니라 경제민주화만 해도 그렇다.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으나 여전히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국회의 경제민주화법 추진에 대해 “경제민주화는 누구를 누르고 옥죄는 게 아니다”며 “대기업이라고 해서 끌어내리면 안 된다”고 국회를 압박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말에야 ‘경제민주화법 1호’로 하도급법 개정안이 크게 졸아든 내용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배경이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악폐에 대해 3배의 범위 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초 약속한 10배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3배 정도로 살아남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기업의 반발은 거세다. 기차나 버스의 부정승차 등 잡범수준에도 10~30배의 과태료를 물리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나 집단소송제 등 산적한 경제민주화의 주요 법안들이 과연 제대로 된 모습으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본격적 경제민주화법의 장래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결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다. 특히 재계와 보수언론 등이 끊임없이 경제민주화를 공격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횡포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남북한 관계 개선 또한 박 대통령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대북정책의 향방은 여전히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답은 대화로 향해 있다. 우선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맞아 박 대통령이 시민과 함께 5월의 노래를 부를 때 여러 면에서 진정어린 ‘국민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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