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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창살 없는 감옥과 퇴행적 집단사고



"민주화 이후에도 다른 관점과 목소리 지역에서 찾기 힘들어 퇴행적 가치관, 이분법적 사고 눈에 안 보이는 창살 많아져"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은 지금은 위헌으로 판결난 일련의 긴급조치를 잇따라 선포했다. 헌법이 보장한 자유롭게 말하고, 모여서 회의하고, 정부를 비판할 권리는 박탈당했다. 그해 4월24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했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정부를 전복하려는 혐의로 모두 180명을 구속했다. 그 중 8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이 사건은 지금도 사법부의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으로 알려진다. 재판부는 2009년 민청학련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새’라는 시는 이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시인 김지하의 작품이다. 그 시에 있는 “청청한 하늘 끝//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왜 날 울리나//덧없는 가없는 저 구름//아아 묶인 이 가슴”은 자유를 잃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애를 담았다. 87년 민주화 이전까지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창살에 갇혔고, 자유를 질식시키던 물리적 창살은 피를 흘린 대가로 크게 줄었다.


군부 독재시절 학교에서 폭력은 소위 대세였다. 또래 집단 내에서도 말보다 주먹이 앞섰다. 작가 이문열이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는 도처에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 밑에서 교장 선생님의 길고 긴 훈시를 들어도 감히 불평하지 못했다. 새마을운동에 발맞추어 집단으로 등교와 하교를 했고, 일요일 오전 6시면 마을회관에 모여 청소를 했다. 동년배가 모이면 으레 칼싸움이나 총싸움을 했다. 미국 유학을 통해 다른 세상, 다른 관점, 다른 생각을 접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뿌리에 분단모순과 군부독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모습은 집안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처럼 한 사회 전체가 권력의 정점을 보면서 학습하고 내면화시킨 결과였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은 북한과 무관하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직 대통령은 국민을 살해한 값으로 법적인 절차를 거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초호화 생활을 누리면서 정당한 벌금조차 내지 않는 것은 범법 행위다. 정치적 선택을 떠나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최근의 정상회담록 공개는 심각한 국기 문란 행위다. 북방한계선(NLL)은 국제법으로 봤을 때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아니다. 주권을 가진 국가라면 당연히 자기 나라 군대의 지휘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2013년 대구에서 이런 상식은 배척된다. 전두환 일가에 대한 검찰의 정당한 압수수색은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광주 5·18 희생자에 대한 왜곡보도와 인격모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다. 민주주의, 인권, 자유, 정의, 평등,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주장하면 종북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80년 전두환정부가 언론사를 통폐합할 때 대구와 경북에서는 ‘매일신문’만 살아남았다. 군부독재 시절 대구는 이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판단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구의 언론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과 달리 대구 언론에서 다른 관점, 다른 목소리, 다른 생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극소수의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과 종교인이 반세기동안 구축한 독과점으로 인해 지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식 문화가 형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상인동 폭발사건이나 중앙로 지하철 참사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엘리트가 없고, 정작 제 가족이 죽고 다치고 직장을 잃어도 이들에게 응당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퇴행적 가치관, 뒤틀린 역사의식, 이분법적 사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창살이 너무 많아진 결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누가 비용을 지불하고 누가 이익을 보는지”에 대한 질문도 못 한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격언이 있지만 유독 대구에서 이 말은 낯설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 2013.7.24)